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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8 18:57 수정 : 2005.04.28 18:57

“세상 모든일 다 알 필요 있나요?”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아온’ 신문이 있다. <딴지일보>다. 지금이야 널린 게 인터넷 신문이고 방송이라지만, 1998년 딴지일보가 만들어질 때만 해도 인터넷 언론의 만개를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37)씨는 선구자다. “어떠한 매체와의 비교도 단호히 거부한다”는 창간 선언은 정치·사회·문화의 금기를 끊임없이 해체하는 시도에서 확인됐다. 저돌적인 질문으로 근엄한 정치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가 하면, 문화 현상에 대한 거침없고 진솔한 진단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 속을 후련하게 했다.

그런 그가 방송에까지 ‘구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기독교방송> 라디오 <저공비행>의 진행을 덥석 맡더니, 지난달부터는 같은 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의 진행자로 자리를 옮겼고, <에스비에스> 라디오 <인터넷 세상>까지 맡았다. “일요일 아침에만 나가는 <에스비에스>는 슬쩍 발만 걸쳐둔 것”이라지만.

CBS ‘시사자키’ 진행에 SBS ‘인터넷세상’ 까지
딴지일보식 발랄한 살려 시사문제 맘껏 ‘요리’
“국제기구 세워 주눅든 아시아 바꿔보고 싶다”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싸이비 싸이버 루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나 기조는 여전하다. 누구나 알아주는 말발로 ‘문화는 수준 아닌, 취향의 문제’임을 <저공비행>에서 설파했고, ‘세상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며 기존 시사프로 진행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시사 문제에 적극적인 소비자는 극소수예요. 소극적인 소비자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주로 일종의 공포 때문에 시사에 관심을 가지거든요. 시사를 다루는 이들이 모두 거룩하기만 하니, 내가 이걸 모르면 후져 보이지 않을까, 무식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죠. 그렇지만 시사란 게 잘 나고 근엄한 분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답지 않은 말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왜 시사일까?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은 있죠. 시사 문제를 둘러싼 ‘껍데기 게임’에서 공포를 가진 이들에게 후련함과 편안함을 주는 게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전문가들한테 ‘난 네가 아니라서 모르는데, 그게 어때?’ 하는 거죠.”

전문가인 말손님이 청취자 위에 서는 것이 기존 시사 프로그램인데, 왜 항상 이래야만 하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몰라도 된다”는 태도로 청취자와 말손님, 진행자가 나란히 서는 구도로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 문제뿐 아니라 스포츠나 만화까지도 시사문제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과 상관없이 요즘의 관심사를 물었다. 방송 다음은 어느 구역을 노리냐고 말이다. 대뜸 국제기구를 만들고 싶단다. 10여개 아시아의 나라가 모여 역사책을 함께 쓰자는 거다. “파키스탄 역사 이만큼 실을 테니, 너희는 우리 역사를 이만큼 책에 써라.” 손짓을 해가며 말하는 그를 보니, 문득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인터넷 매체 1세대로서 할 일은 충분히 한 것 같고요. 서구에 열등감을 가진 아시아를 고쳐보고 싶어요. 배낭여행 다니면서 보면, 아시아 사람들이 서유럽 사람들에게 늘 쫄아 있는 걸 느끼거든요. 그런데 지들이 400~500년 전에는 기껏해야 세계의 변두리였어요. 나랑 아무런 관계도 없고 의미도 없는 ‘워털루 전쟁’ 따위를 배우면서, 대 보기도 전에 서양에 주눅 드는 거죠. 이게 다 교육에서 기인한 겁니다.”

국제기구까지 생각하니 무척 바쁘겠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사에서 만날 때도 그랬다. 약속 시간에 늦어 미안한 얼굴로 나타난데다, 전화벨도 자주 울려댔다. “예~ 장관님…. 저도 보고 싶어요.” 김아무개 장관한테도 전화가 왔다. “국외 출장 떠나시면서 전활하셨네요. 대통령은 되기 힘들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분이죠.”

그의 엉뚱한 상상력이 실현되는 비결은, 현실을 딛고 선 가늠키 어려울 정도의 ‘넓은 발’이 아닐까.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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