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08 16:32
수정 : 2005.05.08 16:32
|
앙코르 유적 답사기행에 참여한 미술인들이 앙코르 톰에 있는 바이욘 사원의 부조 벽화를 답사하고 있다.
|
앙코르와트여! 영감을 부탁해
“저 사자상 엉덩이 좀 봐. 여인 엉덩이 같지 않아?” “난 녹슨 청동색 같은 돌빛이 어떻게 나왔을까가 더 궁금한 걸…”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앞에서 한국의 중견 미술가들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 같았다. 작렬하는 태양 빛 속에서 9~13세기 옛 앙코르 제국의 사원과 유적들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누볐다. 앙코르와트 1층 석조회랑 들머리의 사자상과 하늘나라 무희를 뜻하는 ‘압사라’ 조상, 잇따르는 벽면의 거대한 3단 부조벽화를 숨가쁘게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킬링필드’의 비극 이후 가난의 굴레에 갇힌 주민들의 삶을 취재하는 것도 필수였다. 불타는 듯 붉은 색, 청록색 사암으로 이뤄진 앙코르 석조 예술의 영화 이면에 그 시대 삶의 생생한 자취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의 작가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화가 등 10여명 첫 답사
‘앙코르 제국’ 누비며
사진찍고 스케치하고
작업 모아 9월말 전시
|
▲ 참여작가 이인씨가 스케치한 바이욘 사원의 사면불 모습이다.
|
|
|
|
|
1~6일 펼쳐진 앙코르 기행은 경남 거제 문화예술회관이 개관 2돌을 맞아 세계문화탐방전으로 기획한 앙코르 유적 답사기행 프로그램의 일부다. 답사의 감흥을 집약한 근작들을 후속 전시하고, 탐방 기록 등을 단행본 출간하는 프로젝트다. 참여 미술인은 민정기 오원배 이인 김난영 김양묵 김종구 손을수 이종빈 장원실 장태묵 정일랑 최석운씨. 소설가 김주영씨가 함께 기행단에 끼어 걸쭉한 입담 곁들이며 여정을 나누었다. 앙코르 유적은 답사의 기점인 소도시 시엠렙 외곽에만 무려 1000여 개가 흩어져 있다. 방콕에서 쌍발기를 타고 시엠렙에 도착한 답사단은 별처럼 많은 유적들 가운데 9~10개를 집중 답사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돌아보기에는 항상 짬이 모자랐다.
폐허 더미가 많은 외곽의 타 프롬 사원터와 바콩 사원터가 단연 답사 1순위로 꼽혔다. 타 프롬 사원터는 앙코르 제국의 성군으로 꼽히는 12세기 자야바르만 7세가 모친에게 바친 불교사원이다. 천상의 무희(압살라)가 새겨진 채 떨어져나가거나 무너져 내린 옛 회랑과 사당의 잔해를 스포안이라는 큰 고목이 휘감아버린 신비스런 풍경에 작가들은 상당한 영감을 얻는 눈치다. 조각가 이종빈씨는 “사라진 옛 문명의 시간성과 자연의 생명력이 미묘하게 뒤엉켜있는 풍경”이라며 연신 탄성을 내뱉았다. 화가 오경환씨는 유적 주변에서 전통악기를 불며 구걸하는 캄보디아 빈민들이나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에 주목하며 스케치 붓을 놀렸다. 크메르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반데스라이 사원유적에선 힌두의 신상과 부조의 정교함 못지않게 고동빛과 청동빛이 아우러진 신비스런 돌의 색깔을 분석하느라 작가들 사이에 논의가 분분했다. 한국화가 이인씨는 “부조 바탕의 색조와 우리 미감에는 없는 무희상, 사면불 등의 독특한 형태미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고민하며 작업할 생각”이라고 했다.
답사의 핵심인 앙코르 톰의 바이욘 사원과 앙코르 와트는 대형 사면불 관음상 조각과 사원의 회랑 벽면을 장식한 대형 부조 벽화가 단연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삼층 회랑으로 연결된 앙코르 와트의 중심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벽도 작가들에게는 소중한 체험의 기회였다. 계단을 허위허위 벌레처럼 다른 관람객들과 기어 올라가면서 그 자체로 우주이자 신들의 정원인 사원에서 미물인 스스로의 존재감을 되새김하는 모습들이었다. 롤레이, 바콩 사원에서는 폐허 더미를 스케치하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부산 출신의 작가 손을수씨는 “막상 와보니 건물 자체가 틀에 꽉 잡힌 채 자신의 의미를 다 말해버리는 앙코르와트보다는 폐허 투성이의 외곽 유적들이 상상력을 피워올릴 여지가 더욱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작가들도 십인십색이다. 벽화 도상의 줄거리에 숨은 역사적 의미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민정기씨, 앙코르 와트의 해돋이 때 사원 건물의 윤곽에 매료되었다는 정일랑씨, 유적 주변 원주민들의 질박한 생활모습을 더욱 열심히 취재했다는 최석운씨 등의 다양한 구상과 소감이 쏟아졌다.
답사를 끝낸 4일 저녁 시엠렙을 떠나 4시간여 동안 ‘덜컹’버스를 타고 달린 끝에 작가들은 캄보디아-타이의 국경도시 뽀이펫에 이르렀다. 여장을 푼 다음날 새벽 국경으로 손수레, 인력거, 자전거를 끌고 물 밀듯 돈 벌러가는 주민 행렬을 본 작가 오원배씨는 스케치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앙코르에서 못 본 생생한 인간사의 자취, 역사를 관통하는 삶의 엄숙함이 거기에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치밀한 사전 기획 없이 유람식 기행으로만 이뤄졌다는 아쉬움도 남긴 답사의 성과물들은 9월말부터 10월 중순까지 1차로 거제예술회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앙코르와트/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