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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9 17:58 수정 : 2005.05.09 17:58

좌파 노동운동으로 소재·시각 넓혀

늘어진 프롤로그 등 형식엔 아쉬움

문화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 3부작이 8일 밤 끝났다. ‘한국의 진보’의 ‘진보’는 흔히 진보적이라고 두루뭉수리하게 이야기할 때의 진보가 아니다. 그보다는 계급적으로는 노동현장에 뿌리를 두고,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이른바 ‘좌파’ 노동운동을 특정하는 용어로 쓰였다.

좌파 노동운동의 복원 또는 복권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3부작은 <이제는…>의 한층 넓어진 시야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그동안 <이제는…>의 방점은 아무래도 현대사의 질곡 속에 버려지고 짓눌린 피해자들의 한서린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두어져 있었다. 그 한쪽으로 한-미관계와 국내정치사의 특별한 사건들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사회과학적 접근이 시도돼 왔다. 그런데 이제 마침내 한국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탈바꿈시키려 했던, 그렇기에 가장 불온하고 불순한 금단의 영역으로 금기시돼 왔던 이념적 정치운동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는 ‘운동권’ 바깥에선, 특히 방송을 통해선 한번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좌파 노동운동은 그들이 가장 활기차게 움직였던 1980~90년대 초반까진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일방적 단죄의 대상일 뿐이었다. 좋게 봐야 정의감에 불타는 철모르는 젊은 지식인들이 노동자를 부추겨 정권에 도전하려는 집단적 움직임 정도로 치부됐다. 막상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시작하려는 즈음,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태풍이 몰아닥쳤다. ‘좌파’는 ‘낡은 진보’라는 역설에 휩싸였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모두들 생각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렇게 망각 속으로 들어선 사회주의 좌파 노동운동의 역사를 당시 주체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되살려냈다. 더구나 9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후일담의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는 성공한 진보정당을 통해 지금껏 이어지는 진보운동의 역사적 뿌리로서 그려냈다. 후일담이 그 시절을 함께 고뇌하며 헤쳐나온 동세대들의 허무주의만을 자극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이 그 경험의 연속성에 대한 자부와 성찰의 기회를 안겨줄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 터이다. 시청자 윤지영씨는 <이제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열혈청년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나 봅니다. 지금은 열혈청년이 아닌 아줌마지만 방송을 보면서 너무나 바로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썼다.

아쉬움이 없진 않다. 어렵사리 좌파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면, 당시 금기를 깬 참여자들의 치열한 고투를 좀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회주의에 다가섰다가 다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좌파의 회의와 고민을 둘러싼 한층 촘촘한 점묘야말로, <이제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현장투신을 다룬 1부는 짧은 프롤로그로 그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좋았을 것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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