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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12 17:53 수정 : 2005.05.12 17:53

진보적 고급지가 품격을 지키며 자생 기반을 굳혀가는 길은 과연 있을까? 진보지의 성패는 물론 그 매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역량에 좌우되는 바가 크겠지만, 사회·경제적 조건, 역사적 배경, 나아가 그 사회의 수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지 키우기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 확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영국과 스페인의 대표적 고급지인 <가디언>과 <엘파이스>를 집중분석했다.

모순 헤집는 균형보도…끊임없는 혁신 위기맞서

“지정학적 격변의 시기를 맞았을 때 우리는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


가디언신문사의 온라인 부문인 <가디언 언리미티드>(GU)의 편집장 에밀리 벨은 온라인의 급속 성장 배경의 하나로 2001년 세계를 뒤흔든 9·11 테러를 들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수행’이라는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겁을 먹고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하자, 새로운 시각에 목마른 미국인들의 상당수가 몰려든 것이 바로 온라인 가디언이다.

영국 사회에서 고급 진보지로 정평이 있던 가디언이 온라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늦은 편이다. 1996년부터 5~6명 정도가 투입돼 축구 등 스포츠 관련 분야를 다루다가 99년에 가디언 언리미티드를 별도로 만들어 인원을 4~5배로 늘렸고,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기술직을 포함한 전체 인원을 75명으로 크게 확대했다. 그 결과 현재 전세계 200여 나라에서 한 달 1천만명이 접속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40% 정도가 미국인이라고 한다.

점유율 18%에 불과 영향력은 최고
기자 400명등 3000명 펜파워 묵직
윤리·환경등 사회적 책임 우선가치

가디언 언리미티드의 성공 이유로 적절한 시점의 집중적 투자, 세계적 모순의 폭발, 미국 언론의 균형 보도 상실 등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디언신문사가 오프라인에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진보적 시각의 고품질 전략을 빼놓을 수 없다. 가디언은 38만부로, 고급지 부문에서 3위, 점유율 18%에 머물러 있지만, 독자의 질, 영향력 면에서는 최고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1821년 주간지 <맨체스터 가디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신문의 특징은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한 점에 있다. 1959년 제호에서 출범 도시인 맨체스터를 빼고 5년 뒤 편집 부문을 런던으로 이전해 명실상부하게 전국지로 발돋음했다. 그러나 수도로 발판을 옮겼다고 해서 가디언의 진로가 탄탄대로를 간 것은 아니다. 60년대 중반에는 재정 위기로 <타임스>와 합병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70년대에도 어려운 상황은 계속됐다.

반전의 실마리는 묘하게도 1986년 또다른 독립언론을 표방하며 출범한 <인디펜던트>에 대한 대응에서 나왔다. 새 신문에 독자를 뺏기는 위기상황이 벌어지자 가디언은 88년 디자인과 인쇄품질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고 제호까지 바꾸는 반격에 나섰다. 이후 외부의 여건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가디언은 비교적 안정기에 들어섰다.

신문의 혁신성은 무엇보다도 기자, 글 쓰는 사람들의 신문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크리스 엘리엇 편집기획부장은 필자의 규모에 대해 기자직 400명, 특파원 20~25명, 계약기고자 330명, 프리랜서 2천명의 차례로 단번에 나열했다. 이런 필자들이 가디언이 자랑하는 요일별 별도 묶음인 를 지탱한다. 가디언은 1997년 영국 언론에서 처음으로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 시행 이래 줄곧 옴부즈맨을 맡고 있는 이언 메이즈는 “경영 쪽에는 위계질서가 있지만, 편집 쪽은 수평적인 대학생들의 모임같다”며 “이것이 각자에게 큰 책임의식을 부여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어느 직능집단이나 외부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은어가 있다. 엘리엇 부장은 편집회의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오전 10시15분쯤 하는 1차 편집회의를 ‘검시’라고 표현했다. 전날치 신문을 놓고 주검 해부를 하듯 분석한다는 의미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다음에 벌어지는 확대편집회의다. 신문사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참석해 무슨 주제에 관해서건 발언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는 기자들이 몰려 참석자가 70~80명에 이른 적이 있다고 했다.

가디언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신문으로도 유명하다. 신문재벌 루퍼트 머독이 1990년대 초반 타임스를 인수하고 나서 신문가격을 제조원가 이하로 파는 출혈판매 경쟁을 촉발시켰을 때, 다른 신문들과 달리 따라가지 않았다. 지금 영국 언론은 판형전쟁이 한창이다. 인디펜던트가 2003년 판형을 대판에서 타블로이드로 바꾸자 타임스도 동조하고 나섰다. 이라크 전쟁 때 반전기치를 분명히해 독자 수를 늘렸던 가디언은 그 여파로 부수가 2만부 정도 감소했다. 가디언은 전사적인 토론 끝에 대판과 타블로이드의 중간형인 벌리나판을 올해부터 도입키로 했다가 윤전기 등의 사정으로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이 신문은 신문판매 정책에서도 할인 예약신청을 받지 않는다. 제값을 받고 파는 비율이 84%로 업계 최고다.

가디언의 혁신성은 2003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보고서 ‘우리의 가치를 살며, 사회·윤리·환경 감사’에서 다시 점화됐다. 신문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보호외투를 벗어던진다고 선언한 이 보고서는 독자, 회사 구성원, 사회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스스로 평가를 시도해 신문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혁신 자세가 가디언 구성원들의 자신감을 채워주고 있다. 신문시장의 전반적 위기에 관한 물음에 스텔라 보먼 전략담당 이사가 “비관주의가 펴져 있다는 것은 알지만, 좋은 브랜드,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겁에 질릴 필요가 없다”고 잘라말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김효순 기자 hyoskim@hani.co.kr


■ 스콧재단 수익구조
70여종 광고정보지 수익…매체독립·진보성 버팀목

가디언신문사의 단일 소유자는 스콧 재단이다. 재단의 이름은 1872년부터 무려 57년 동안 신문의 편집인으로 재직한 찰스 프레스트위치 스콧(1846~1932)에서 유래됐다. 스콧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부자가 1936년 4개월의 시차를 두고 숨졌다. 홀로 남은 그의 아들 존 러셀 스콧은 상속세 납부 문제로 신문사가 공중분해될 것을 우려해 전재산을 기부해서 스콧재단을 만들었다. 명분은 진보적 독립언론을 런던 플리트가의 탐욕스런 신문재벌들의 수중에서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가디언은 보어전쟁에서 식민정책을 비판했고, 스페인 내란 때는 영국의 주요 신문 가운데 유일하게 공화파를 지지해 기득권층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재단의 목표는 진보 신문이 영구히 존속하도록 복무하는 데 있는 것으로 규정됐다. 재단은 편집인을 임명하지만, 편집 제작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가디언>의 마케팅 이사 마크 샌즈는 “거의 70년 전에 이런 구조가 마련됐다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비전”이라며 “그러지 않았다면 가디언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재단의 수익구조는 상당히 다분화돼 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지방지 방송사들 외에 벤처자본 비시 파트너스와 공동소유하던 중고자동차 거래 광고지 <오토 트레이더>를 트레이더 미디어그룹(TMG) 산하로 통합한 뒤 2003년에는 완전 인수했다. 티엠지는 현재 70여종의 광고 정보지를 발행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려 가디언 매체들의 독립성과 진보성을 보장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 옴부즈맨 이언 메이즈
독자와 기자, 대등한 소통 효과적

가디언에서 옴부즈맨을 맡고 있는 이언 메이즈(68)는 자신의 구실을 ‘독자와 기자들 사이의 게임에 선 공정한 심판’으로 설명했다. 기자 경력이 거의 50년에 이른다는 그는 독자들로부터 제기되는 각종 이의제기나 정정보도 요청을 처리하며 주 1회 독자들의 문제제기를 다루는 칼럼을 토요일치에 싣는다. 가디언에 1988년에 입사해 문학·예술·논평과 분석 등의 부장을 지냈고, 옴부즈맨 구실을 겸하고 있는 ‘독자부장’이란 직책을 스스로 지었다.

―왜 독자부장인가?

=고마워하는 독자에게 뉴스를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시대는 지났다. 독자와의 관계를 대등하게 교류하는 성인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독자들의 요구는?

=명예훼손에서 기사불만, 잘못 인용, 철자법 오기까지 다양하다. 하루 30~60개의 전자우편이 오는데 중복되는 것이 많아 6개의 지적, 요구가 있다면 1개 비율로 처리한다. 연간 1500~1600개의 사항이 정정·해명란에 실린다.

―어떤 효과가 있나?

=독자들과 상시적 대화창구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의 제기의 상당수가 결국에는 이렇게 좋은 제도가 있느냐고 축하하는 것으로 끝난다. 신문사 쪽을 보더라도 법제팀의 업무량이 3분의 1 또는 절반 정도 줄었고, 소송으로 끝까지 가더라도 신문사의 피해를 악화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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