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5.18 17:05
수정 : 2005.05.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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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환 <연세춘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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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대학별곡’을 새로 시작합니다. 2005년 대학생들이 직접 대학가의 문화 현상과 소식을 당돌한 글솜씨와 시각으로 주마다 한 차례씩 전할 참입니다. 김강지숙 <이대학보>(이화여대 국문학) 김지수 <서울예대학보>(문예창작) 이가현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연극원) 장정우 <대학신문>(서울대 언론정보학) 정진환 <연세춘추>(연세대 법학) 대학생 기자가 참여합니다.
디엠비(DMB) 휴대폰 1대, 홍콩여행권 1장,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50매. 레스토랑, 미용실 할인티켓은 수백 장이다. 워워. 놀라지 마시라. 지난 12일 연세대 광혜원 앞마당에서 열린 퀴즈대회의 지급 상품들이다.
한국 근대병원의 효시인 광혜원이 생뚱맞은 비명들로 휩싸였다. 행사의 취지를 전하려던 이곳 총학생회장 윤한울(정치외교학 4년)씨의 목소리는 상품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함성에 묻혔다. 퀴즈를 통해 학교 역사를 짚어보자는 취지의 퀴즈 대회에만 500여명이 떼로 달려들었다. 고리타분한 행사와 ‘새끈한’ 상품의 협화음이다.
행사를 주최한 학교 홍보도우미 팀장 이승은(경영학 3년)씨는 “참가자들과 협찬사인 ㅌ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 사이 ㅌ사 직원들은 학생들에게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대학 축제가 기업 협찬 행사로 넘쳐난다. 축제시즌을 맞아 ㅌ사의 홍보담당자는 요즘 누구보다 바쁘단다. 스폰서를 요청하는 각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들 때문이다. 대학이 먼저 축제 성패를 상당량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축제준비위원장 이수지(국문학 3년)씨는 “어렵게 ㅌ사와 통화했지만 대학들 스폰서 요청이 너무 많아 우리 학교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전했다.
대학들이 기업 후원에 이렇게 목매는 까닭이 무엇일까. 윤씨는 “축제에 배정된 총학생회 예산이 정말 적어 학생 부담을 줄이면서 질 좋은 축제를 만들기 위해선 기업의 지원은 필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학교 캠퍼스는 기업체의 홍보 부스로 넘쳐난다. 학습권과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온다. 이 학교 국문과 2학년 윤현주씨는 “학생들은 경품을 얻는 대신, 학생이 주인이 되는 축제를 잃는다”며 “물질 중심의 행사로 변질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기업체의 물량공세 못지않게 최근의 대학 축제를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건 초청 연예인이다. 서강대 이씨는 “연예인이 참가하는지에 따라 학생들의 참여폭이 결정되는 게 사실”이라며 “연예인 출연이 없는 날엔 축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캠퍼스가 조용하다”고 전했다. 고려대나 연세대 축제 등이 모두 화려한 연예인 캐스팅으로 대학교 축제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반면 일체의 연예인 섭외와 기업 후원을 거부한 이화여대의 지난해 축제는 참담했다. 당시 총학생회장 김경희(보건교육 4년)씨는 “영산줄다리기 같은 행사를 빼고는 호응을 얻은 게 없었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이대는 결국 올해 기업 의존도를 높이고 연예인도 불러오는 축제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고려대 사태’로 인해 기업과 대학의 관계가 새삼 조명되고 있다. 여러 대학들이 ‘기업체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수업방식(조모임, 프레젠테이션 등)을 채택하고 있다.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하나로 어울리는 대동 축제의 의미는 퇴색한다. 2005년 대학 축제에 옐로우 카드를 준다.
정진환 <연세춘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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