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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5 21:03 수정 : 2005.05.25 21:03

26일부터 국제갤러리서 20주기 회고전

‘불꽃 여자’. 타는 듯 강렬한 원색과 요동치는 듯한 선으로 여성적 에너지의 힘을 마음껏 화폭에 부렸던 작고작가 최욱경(1940~1985)을 미술인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전사 같은 예인적 기질과 서구 모더니즘 화단의 세례를 유학 중 한껏 받았던 이력이 어우러져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 화단에서 유례없이 표현력의 영역을 극한까지 확장했던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칙칙하고 어둔 색 일색이었던 60, 70년대 우리 화단에서 파랑, 빨강, 남색 등의 원색을 주저 없이 내뱉듯 풀어냈던 최욱경은 본격적인 색채 화가의 길을 열었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심장발작으로 안타깝게 요절한 최욱경의 20주기 회고전이 26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막을 올린다. 유족들에게서 빌려온 초기 작부터 말년 작까지 40여 점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서구 추상표현주의에 쏠렸던 유학 직후의 작업부터 이 땅의 산하를 기행하며 나름대로의 서정성을 획득해가던 말년까지의 역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특히 작가가 미국에 유학한 60년대부터 일시 귀국하기까지의 1시기, 71~78년 미국에서의 본격 활동기를 다룬 2시기, 78년 귀국 뒤 작고 때까지 원숙기를 다룬 3시기로 전시작품들을 구분해 배치한 배려가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전시의 고갱이는 감각적이면서도 야성적인 미감을 분출하는 꽃 작업들이다. 특히 70년대 미국에서 작가활동을 할 당시의 꽃 작업들을 보면 노랑, 분홍, 보라, 파랑의 밝은 색채 속에 뚜렷한 형상성을 표출하는 것들이 많다. 강렬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빗살무늬 같은 사선 표현, 원색이 부딪히며 화면 위에 두텁게 내려앉는 현란한 이미지들 속에는 변화무쌍한 작가의 정신적 에너지가 숨어있다.

75년작 <꽃피는 사당>이나 <무제>로 이름 붙여진 꽃연작들이 이런 작업들인데,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빌렘 드 쿠닝의 막가는 듯한 선과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 같은 강렬하고 섬세한 색상이 생명력과 여성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본연적 감정을 화폭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칸딘스키의 색채추상도 떠올리게 하는 작업들은 70년대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대자연과 부대끼며 현상, 색채, 구성에 대한 그만의 독창성을 키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원숙한 색채감각을 보여주는 말년의 파스텔톤 작업들도 주목된다. 그는 78년 귀국 뒤부터 숨질 때까지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뜨게 된다. 그가 묘사한 80년대 꽃잎 연작과 이 땅의 산 그림들은 형태와 선이 좀더 명확하고 부드러워지면서 폭발할 듯한 감정 표현 대신 절제되고 압축된 단순미를 보여준다. 항상 줄담배를 물고 다녔던 작가는 “내가 도달하려는 것은 본연의 감성 그 자체를 시각적 용어로 환원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열정을 채 못다 풀고 떠난 작가가 고루한 화단의 벽 앞에서 꾀했던 탐구의 몸짓, 좌절, 고뇌 등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6월 26일까지. (02)735-844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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