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30년 가까이 떡 연구…현대화 앞장선 ‘떡 전도사’ 윤숙자(57)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2002년까지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 전통음식의 재현과 현대화·대중화에 앞장서왔다. 윤 소장은 상품성 있는 떡 개발을 위해 학생들과 함께 ‘떡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떡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오래 보관하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떡’을 개발하는 등 떡을 ‘세계화’하기 위한 작업도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그는 사회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떡과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알리고 싶어 2002년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전통음식연구소를 개설했다. 이 연구소의 평생교육원에서는 한 해 연인원 1천여명의 수강생들이 떡, 한과, 폐백음식, 이바지음식, 전통주, 차류, 음청류, 장류 등 우리 전통음식을 배운다. 20권 가까이 되는 우리 음식 관련 서적을 펴내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해온 윤 소장은, 최근 <노루궁뎅이 버섯 분말을 첨가한 설기떡의 품질 특성>이란 논문을 한국조리과학회지에 게재해 기능성 떡 개발을 제안하기도 했다.
5대 영양소 골고루 든 건강식…빵보다 좋아
외국인에게 먹여보면 “원더풀” 연발
레토르트떡 개발로 석달 지나도 굳지 않죠 케익이나 빵 같은 서양 먹거리에 떡이나 한과가 밀려난 지는 오래 됐다. 하지만 요즘 참살이(웰빙) 바람에 힘입어 건강에 좋은 우리 떡이 조금씩 인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평생 떡과 우리 전통음식을 연구해오며 떡의 현대화·대중화에 힘써온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의 떡 사랑은 남다르다. ‘떡 전도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떡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해 열일 제치고 나선다. 떡을 오래 보관하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떡’을 개발했고, 백설기에 야채 샐러드를 넣은 ‘떡샌드위치’나 각종 떡과 멸치볶음, 동치미 등을 담은 ‘떡도시락’ 같은 새로운 떡 상품도 내놓았다. 윤 소장에게서 ‘떡 예찬론’과 떡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우리 음식 가운데 김치 다음으로 세계화가 가능한 식품이 떡이라고 주창해오셨는데, 그렇게 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김치는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세계화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세계화시킬 음식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떡은 다른 음식과 달리 국물도 생기지 없고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어서 간편합니다. 또 우유나 차를 곁들여 간식으로뿐 아니라 식사 대신으로도 먹을 수 있어 세계화하는 데 적격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여러 차례 해외 강연이나 해외 식품박람회에 참여할 때마다 외국인들에게 떡을 맛보여본 결과 ‘원더풀’을 연발하며 좋은 반응을 보여 세계화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떡이 영양면에서 서양의 빵이나 케익보다 좋은 점이 있나요? =빵과 케익은 밀가루와 설탕, 버터, 생크림을 많이 사용해 자칫 비만을 부를 수 있어요. 이에 견줘 떡은 찹쌀이나 멥쌀에 콩·팥 같은 두류, 땅콩·호두·잣 등의 견과류, 앵두·살구·감 등 과일류, 호박·당근·쑥 등 채소류를 두루 재료로 쓰기 때문에 5대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는 건강식입니다. 하지만 떡이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도 2~3일만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져 오래 두고 먹기 힘들다는 점이 떡 연구를 해오면서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냉장·냉동 보관하지 않고 실온에서 3개월간 보관할 수 있으며, 전자레인지나 끓는 물에 데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떡’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레토르트 떡을 개발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10여년간 매달려 기술을 개발했어요. 레토르트 떡은 쌀가루와 콩, 호두 등의 떡 재료를 용기에 넣어 진공처리한 뒤 미생물을 억제하고 산화를 막기 위해 탄산가스와 질소를 배합한 가스를 주입하고, 섭씨 104도에서 1시간30분 정도 물로 가열해 떡을 익히는 동시에 살균처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포장용기에 소량의 쌀가루와 물을 넣고 찌니 떡이 잘 익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지요. 탄산가스와 질소가 관을 통해 주입되는 과정에서 쌀가루가 날리는 바람에 떡 모양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구요. 가열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떡이 눌어서 누릇누릇해지기 때문에 적정 가열시간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떡을 대중화할 수 있는 기술 문제는 이제 해결됐으니 많은 사람들이 떡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처를 늘리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레토르트 떡만 해도 꽃딸기케익떡, 흑미영양케익떡, 달호박케익떡, 향커피케익떡 등 8가지나 됩니다. 이밖에 그동안 연구소 내의 떡연구실에서 개발한 수십가지의 떡을 비롯해 다섯가지 종류의 떡에 찬으로 멸치조림, 야채샐러드, 시원한 동치미와 녹차가 곁들여져 나오는 ‘떡 도시락’을 연구소 건물 1층에 있는 떡 카페 ‘질시루’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거리마다 베이커리나 케익 전문점은 많지만 떡을 사려면 재래시장 같은 데 가야만 해요. 그래서 지난해 말에는 서울 인사동에 15평 규모의 ‘질시루’ 1호점을 냈어요. 인사동점을 시범 운영한 뒤 떡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가맹점사업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연구소 내 평생교육원에 ‘떡·한과반’을 개설한 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떡에 대해 가르쳐서 곳곳에 떡집, 한과집을 개설하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여러 음식 가운데 유달리 떡, 그리고 우리 전통음식 연구에 30년 가까이 매진해오신 계기가 있나요? =제 고향이 개성인데, 어려서 어머니께서 늘 떡을 만드시고 엿을 고고 술을 빚는 등 전통음식을 많이 만들어 가족과 손님들에게 내놓으셨어요. 명절이면 산자와 강정도 정성스레 만들어주셨고. 4남매의 막내인 저는 늘 어머니 곁에서 음식 만드시는 걸 지켜보며 먹고 맛을 음미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제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우리 음식에 대해 깊이있게 배우고 싶어 전공으로 선택했지요. -정년이 보장된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연구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만류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50살 때 위암으로 고비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대학에서 소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20여년간 할 만큼 했으니 이젠 신이 내게 준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교육을 통해 돌려줘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 음식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설득해 도움을 받고 제가 평생 모은 돈과 퇴직금을 쏟아부어 종로구 와룡동의 낡은 건물을 샀어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그 안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떡박물관, 부엌살림박물관, 평생교육원, 떡 카페 등을 열었습니다. -연구·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하셔서 우리 전통·향토 음식의 재현 및 현대화·대중화에 공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책은 어떤 책입니까? =그동안 <규합총서> <한국의 떡> <한과 음청류> <한국의 혼례음식> <한국의 발효음식> <굿모닝 김치> 등 20권 가까이 되는 우리 음식 관련 책을 펴냈습니다. 이 중에서 <규합총서>는 조선시대 최고의 고조리서로 평가받는 책으로, 원문이 한글 고어체여서 원문에 충실하게 현대적으로 재현하느라 고생을 했어요. 시대적인 차이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재료도 있었습니다. 원문이 너무 간략하고 추상적인 데다, 계량단위가 지금과는 다른 점도 옛 음식을 재현하는 데 어려운 점이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직 소개되지 않은 훌륭한 고조리서가 많이 있습니다. 고조리서 가운데 몇권을 펴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음식, 그 중에서도 특히 떡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제자를 많이 길러내서 떡집이 많이 생겨나고 전통음식이 대중화·세계화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싶습니다. 윤영미 기자 youngmi@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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