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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3 16:42 수정 : 2005.06.03 16:42


△ (사진설명) 1987년 6월항쟁의 결실로 태어난 한겨레신문사는 1991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 집을 지어 입주했다. 양평동 공장지대의 창고건물에서 시작한 <한겨레>는 지난 17년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언론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개인의 권리 수호를 위해 애써왔다. 창간 17돌을 맞아 제2창간을 선언한 <한겨레>에 대해 각계 인사들의 당부와 질책이 ‘한겨레 제2창간운동’으로 확산되어 곧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17년전 불씨 모아 ‘제2창간’ 점화
각계 1천명 참여 범국민운동으로
발전기금 모금·독가배가 새 도약

“제2창간 느낌이 좋다. 한겨레 보는 사람마다 밥맛 나고 살맛 나면 좋겠다.”(최일도 목사)

“지금 민주화운동 진영이 힘이 많이 빠져 있다. <한겨레>와 함께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한겨레>에는 6만2천여 주주가 있다. 한겨레 불꽃을 피워내는 데 이들 주주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앞장서겠다.”(김태홍 국회의원)

87년 6월항쟁으로 태동한 <한겨레> 창간운동이 17년 만에 다시 ‘한겨레 제2창간운동’으로 불씨가 이어져, 본격 점화를 앞두고 있다.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제2창간위원으로 참여한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공동본부장 정태기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박원순 변호사, 박찬욱 감독, 작가 공지영씨 등)는 오는 7일 제2창간선언과 함께 1987~88년의 <한겨레> 창간운동에 버금가는 범국민 운동을 시작한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는 <한겨레>의 질적 도약과 21세기 지속가능한 언론기업의 모태가 될 발전기금 모금과 <한겨레> 보기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는 창간 이후 큰 변화없이 유지되어온 기존의 주주와 독자에다, 민주화이후 성장세대를 영입시켜 한겨레를 더욱 젊고 역동적인 신문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88년 한겨레 창간에 앞장섰던 사회 원로들도 한겨레 제2창간운동에 대해 “젊은 세력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형규 목사는 지난달 11일 정태기 공동본부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 30~40대가 중심이 되어야 제2창간이 성공한다”며 “30~40대가 관심을 가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성공의 관건”이라고 격려했다.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박 목사외에 리영희 교수,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강만길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소설가 최일남, 송기숙씨, 언론인 임재경씨, 백낙청 시민방송 이사장, 함세웅 신부 등이 함께했다.

제2창간운동본부는 또 지난달 31일 같은 장소에서 제2창간위원 대표 초청간담회를 열어 제2창간 선언과 함께 본격적으로 펼칠 범국민 운동의 목표와 방향, 국민 참여방식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들은 간담회에서 한겨레 제2창간 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민주화 이후의 민주진영 통합에 도움이 되는 운동과,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7년 동안 한겨레가 한 일과 소홀히 한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하라” “기업 마인드를 갖고 신문사를 운영하라”는 등의 지적을 했다.

한겨레 제2창간 운동은 지난 4월 한겨레에 제2창간 운동본부 사무처가 꾸려져 한겨레가 거듭나고 있음을 알리는 광고를 내고 각 지역 주주·독자 모임을 열면서 태동했다. 한겨레는 사무처가 중심이 되어 그동안 광주·대구·부산에서 각각 지역 여론주도층과 한겨레 주주·독자를 초청해 주주잔치와 간담회 등을 갖고 한겨레 제2창간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제2창간 운동에는 공동본부장으로 공지영(작가), 김어준(딴지일보 대표), 김형태(변호사), 문규현(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 박원순(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박찬욱(영화감독), 박청수 교무(원불교 강남교당), 안성기(배우), 정태기(한겨레 대표이사),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조훈현 국수,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청화 스님(조계종 총무원 교육원장), 최일도 목사(다일복지재단 대표), 황석영(작가)씨가 참여했다.

또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중앙집행위원, 웃어른빛(고문단), 도움빛(자문단), 홍보도움빛, 제2창간위원으로 역할을 나눠 운동을 펼친다. 한겨레 제2창간에 참여한 각계 인사 명단과 선언문은 7일치 <한겨레> 지면을 통해 발표한다.

<한겨레>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어이, 부드럽게 좀 해봐 아니, 개성도 살려야지

공동본부장 맡은 박찬욱 감독 제2창간 ‘메가폰’

%%990002%%<공동경비구역> <올드보이>로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한국 영화의 도약과 국제화를 이뤄낸 박찬욱 감독이 이번엔 한겨레 제2창간 성공을 위해 메가폰을 잡았다.

5월 마지막날, <한겨레>의 도약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제2창간에 나선 ‘한겨레 제2창간 운동본부’ 공동본부장 가운데 30~40대 청장년층 독자들과 <한겨레>를 이어줄 ‘젊은 본부장’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박찬욱 감독은 88년 창간 당시부터 <한겨레> 애독자였다. 박 감독은 최근 이영애씨 주연의 <친절한 금자씨>를 제작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한겨레>의 제2창간 공동본부장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 등 영화인으로서는 드물게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들을 쏟아냈던 박 감독이긴 했지만, 영화의 평가와 흥행 성공의 상당 부분이 언론매체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 속에서 영화감독으로서 특정 신문의 ‘제2창간 지도부’에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더욱이 박 감독은 한국 영화의 중흥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을 대는 영화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언론민감형’ 감독이다.

박 감독은 “안티조선 운동이 한창일 때, 대중문화인들에게는 서명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며 “대중문화계의 생리상 특정 언론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구독하는 신문을 지지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며 사뭇 심각한 웃음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 지지 선언 어때요?

박 감독은 “82학번이고, <한겨레> 창간호를 받아든 뒤 내 또래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벅찬 감동을 느꼈다”며 말을 이어갔다. 박 감독이 전하는 <한겨레> 창간의 감동은 이런 것이었다. “<한겨레>는 그냥 신문이 아니었다. 진보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뤘고, 그 얘기를 전달할 종합일간지를 갖게 됐다는 뜻이었다. 또 의지를 가지고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해야 접할 수 있었던 ‘진보 담론’이 공기처럼 생활 속으로 파고들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겨레의 창간에 대해 각별한 추억을 갖고 있는 박 감독이 한겨레에 무조건의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은 “애정을 갖고 <한겨레>를 읽으면서도 단조롭고 심심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며 “제2창간의 핵심은 풍성하고 재미있는 기사가 돼야 할 것”이라며 제2창간의 방향을 짚기 시작했다. “진보라는 핵심 가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 경직되고 선명한 얘기들만 펼친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세상이 부드럽고 다양해진 것이다. 진보적인 자세로 노력하되, 독자들에게 다양한 내용과 시각을 재밌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게 박 감독의 당부이자 비판이다.

박 감독은 또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려는 영화가 가장 실패하기 쉽고, 신문도 마찬가지”라며 “제2창간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원래 <한겨레>에 애정이 있는 독자를 더 가깝게 끌어들일 수 있는 개성있는 신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박 감독은 “인터넷 매체의 발달 등 신문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매스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의 제2창간은 충분히 의미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큰 시도”라는 격려를 덧붙였다.

흥행과 작품성 살려 대박 터뜨려야죠

“나는 텔레비전도 거의 안 보고,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신문만 본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불필요한 정보에 한 눈을 팔다 시간을 낭비하기 십상이다. 나처럼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날 치 가장 중요한 정보와 이에 대해 가장 깊이 있는 해석만 정리해 배달해주는 신문이 가장 적합한 매체다. <한겨레>가 제2창간을 통해 중요한 정보와 깊이 있는 해석들만 제대로 전달한다면 <한겨레> 신문의 미래는 밝다.”

글 <한겨레>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 choi21@hani.co.kr


“한겨레는 더욱 튼튼해야 합니다”

이형범씨 기금 첫 접수 이어 답지 잇따라

한국 사회 민주화의 상징이자 6월항쟁의 결과물인 ‘한겨레 창간 성공신화’의 재현이 예고되고 있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이 본격 출범하기 이전부터 ‘한겨레 발전기금’ 약정이 이뤄지는 등 기금을 내겠다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의 핵심이 될 ‘한겨레 발전기금’의 1호 납입자는 제2창간운동이 틀을 갖추기 한참 전인 지난 4월말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자원활동가 이형범씨는 지난 4월21일 <한겨레>의 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겨레가 거듭나는 제2창간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봉투를 손에 쥐어주며 “제2창간에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씨가 전해준 봉투에는 1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씨는 쾌척 사유를 묻는 한겨레에 “우리 사회는 약자가 도약하기에 매우 힘든 구조예요. 만약 <한겨레>가 100만부 시대를 열 수 있다면 한겨레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룰 것입니다”라며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한겨레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만큼 한겨레는 더욱 튼튼해야 합니다”라는 격려를 보냈다.

5월31일에는 30대의 회사원 정문환씨가 30만원의 발전기금을 입금했다. 정씨는 “88년 창간 당시 대학생이어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당시에도 발기인 모집과, 신문을 배달하며 한겨레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작은 역할을 했다”며 “한겨레가 제2창간을 한다고 하니 나에게도 영광스러운 기회가 온 것 같아 작은 정성을 전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씨는 또 “내가 있는 위치에서 열심히 살며 한겨레를 지킬 것을 약속한다”며 “제2창간의 성공으로 지금보다 더 소중한 일들을 많이 해달라”고 말했다.

50대 중소기업인 고일규씨도 지난달 30일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에 1000만원의 ‘발전기금’을 내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고씨는 “나는 무명인사다. 대신 아들 이름으로 해주면 좋겠다. <한겨레>는 군대에 가 있는 내 아들 세대와 함께 성장해야 할 신문”이라며 “88년에는 몰랐고, 이번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발전기금’ 참여방법은 오는 7일 <한겨레>를 통해 발표한다.

<한겨레>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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