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5월31일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제2창간위원 대표 간담회에는 19분이 참석해 한국사회에서 ‘한겨레’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하고 당부를 전했다. 왼쪽부터 정태기 한겨레신문사 사장,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고진화 국회의원, 김민전 경희대 교수,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 작가 공지영씨, 김형태 변호사, 김종수 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주주·독자들에게 제2창간의 진로를 묻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는 지난 4월 한겨레 사내에 사무처 조직을 만들고, 한겨레를 아끼는 분들을 찾아나섰습니다. 정태기 대표이사는 4월부터 주요 도시를 찾아 각 지역 원로들과 한겨레 주주·독자를 만나 <한겨레>에 대한 질책과 격려를 들었습니다. 전남·광주(4월30일), 대구·경북(5월10일), 부산·경남(5월21일)에서 모임을 개최했고, 서울 지역에서는 5월11일 한겨레 창간에 앞장선 당시 재야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31일엔 제2창간위원 대표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전국 곳곳을 찾아 주주와 독자들을 만나는 이 행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한겨레에 대한 질책과 함께 한겨레의 제2창간은 한겨레 내부의 역량만으로 될 일이 아니고, 창간 당시처럼 범국민적 운동으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각계 원로들, 지역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한 주주와 독자들이 <한겨레>에 대해 쏟아낸 애정과 질책, 당부와 격려를 전달해드립니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
서울 창간의원 대표간담회 <한겨레>는 5월31일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제2창간위원들 가운데 공동본부장, 중앙집행위원, 도움빛으로 참여하신 각계 인사 대표들을 초청해 제2창간 운동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김형태 변호사, 김종수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김민전 경희대 교수, 최일도 목사를 비롯한 19분이 참석해 한겨레 제2창간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성공적인 운동을 위한 도움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좋은 제품 만들어 독자들이 먼저 찾도록
외부인력 적극활용…각계 의견 경청을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 : 독자 늘리는 데는 릴레이 방식이 효과적이다. 노동자·농민 등 대중조직은 돈은 별로 없지만 신문 부수를 늘리는 데는 많은 사람의 참여가 가능하다. 기금을 모으는 것만 아니라 지역별로 동시다발 릴레이 방식 등으로 재미나게 시작해보자. 조송만 누리텔레콤 사장 : 기업인 입장에서 말하겠다. 기업으로서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 독자에게 한겨레는 어떻게 각인되어 있나? 한겨레는 언제까지 주주와 독자, 릴레이에 의존할 것인가. 유익한 읽을거리를 제공해 독자가 찾아가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김종수 한울 대표(출협 이사장) : 신문·책이 다 함께 안팔리는 ‘읽는 문화’ 위기의 사회다. 읽는문화 제고를 위한 범사회적 차원의 공동운동이 신문 독자유지에 필요한 시점이다. 출판·언론계가 점점 어려워지는 환경 돌파위해 공동캠페인 필요하다. 많은 것 욕심내기보다 어디는 어디가 최고라는 확실한 게 필요하다. 김형태 변호사 : 운동본부 만들어졌으니, 조직별로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신문이 만들어진 지 17년 되었는데 처음에는 신문이 사회 각계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기자들의 것이 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외부로부터 수혈을 받아 씽크탱크로 활용하기 바란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한겨레는 기존 독자와 함께 늙어갈 것인지, 새 독자를 찾아 새 신문을 만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의 시대는 끝나고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취향의 시대가 되었다. 기존독자와 새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말 제2창간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한겨레를 만든 사람들도 시대의 자식들인데 현실적으로 젊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신문을 기존 구성원들이 만들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공지영 작가 : 한겨레가 창간한다며 주식을 모으던 시기는 주식시장 최대의 활황기여서 주주에게 많은 배당을 안겨주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겨레 주주배가운동을 펼치려면 한겨레가 주주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겨레 기자들이 생활고에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 한겨레가 각계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겨레>를 적극 홍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하고 있다. 한겨레가 전에는 읽을 게 많았는데 최근엔 줄어든 것 같다. 한겨레를 읽으면 재미와 정보가 동시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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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전 경희대 교수 : 88년 당시 즐겁게 주주가 되던 교수와 선배들 중 상당수가 더이상 한겨레 독자가 아닌 현실이다. 민주/반민주 구도가 사라진 세상인데, 지난 17년간 겪은 분화보다 더 심각한 분화가 앞으로 한국사회에 닥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소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한겨레는 가능하면 통합적 접근을 고민해달라. 최일도 목사(다일복지재단) : 제2창간 느낌이 좋다. 한겨레 보는 사람마다 밥맛나고 살맛나는 신문 되면 좋겠다. 다일공동체도 17년 되었다. 한겨레를 창간 이후 빠지지 않고 읽어왔다. 너무 재미있는 신문이 되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한겨레가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할 이유는 재미있는 신문이 아니다. 꼭 필요한 신문,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신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 한겨레가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고 이를 가벼운 이미지로 보완하려는 것 같다. 한겨레가 해야할 사회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에 중점을 둬야 한다. 한겨레의 내부의 다양한 논의구조가 한겨레가 강력한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기도 한다. 한겨레가 17년간 변화를 망라하는 새 비전설정과 논의가 필요하다. 한겨레의 내부역량이 충실해지면 외부 인사들은 그 확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 언론운동 측면에서 한겨레에 미안함이 앞서고 책임감을 느낀다. 기업가 입장의 말씀이 있었지만, 신문기업에 기업원리를 적용할 수 없는 시장상황이었다. 이미 96년에 신문시장에서 살인사건이 날 정도로 신문시장은 붕괴되었다. 최근 가까스로 제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늦었다. 지금 민주화운동 진영이 스스로의 무기력에 힘이 빠져 있다. 어떻게 한겨레와 함께 다시 시작할 것인가. 무엇을 모티브로 삼아 다시 시작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창간 원로 간담회 30∼40대 끌어당길 밧줄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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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인사 간담회 생존보다는 한국최고를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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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인사 간담회 보고 또 보고 싶은 신문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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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5월21일 부산 거제동 영진빌딩에서 한겨레 영남본부 이전식을 겸해 열린 <한겨레> 창간 17돌 기념식에는 300여명의 주주·독자가 참석했다. 참석한 주주들은 “한겨레신문이 부산 주주들을 초대하기는 17년 만에 처음”이라고 기뻐하며 부산지역 주주가 독자배가에 나서자고 말했다. 5월21일에는 <한겨레> 영남본부 이전식과 한겨레 창간 17돌을 기념하는 간담회가 부산 연제구 거제동 영진빌딩 6층 한겨레 영남본부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한겨레 주주 등 300여명이 참석해, 애초 50여명을 모시고 진행하려던 예상을 깨고 큰 성황을 이뤘습니다. 대부분의 주주들은 애초 행사장소인 다과회장을 나와 “우리가 어디 밥 얻어 먹으러 왔나. 여기까지 왔는데 한겨레 지사 사무실은 한번 보고 가야하지 않겠나”하며 영남본부 사무실을 방문해 사무실이 출근길 만원버스처럼 붐볐습니다. 한겨레를 아이에게 보여주겠다면서 가족 전체가 오신 분들도 있었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총출동한 가정도 있었습니다. 이날 주주와 독자들이 해주신 말씀들입니다. “한겨레신문이 부산 주주들을 초대하기는 17년 만에 처음이다. 스크랩해서 두고두고 계속 보고싶은 신문을 만들어달라.” “특정신문 안보기 운동은 필요없다. 지금부터는 우리 다같이 <한겨레> 보기 운동을 벌이자.” “5년 안에 한겨레가 조선일보를 꺾지 못하면 우리 모두 영도다리에서 뛰어내려 바다에 빠져죽자. 우리 5년 뒤 영도다리에서 만나는 일이 없도록 지금부터 다함께 힘을 모으자.” “내가 세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은 아무리 <한겨레>를 권해도 조선일보를 본다는 이유로 1층에 세들어 있던 약국을 쫓아냈다. 그때부터 나는 한겨레 전도사가 됐다. 나까지 쫓겨날 수는 없지 않겠느냐.(웃음)” “한겨레 창간 당시 독일에 유학중이었다. 유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한겨레에 송금했다. 얼마 뒤 귀국해 한겨레신문 관계자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돈을 잘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받기는 받았는데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하더라. 왜 쓰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정확하게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없어 혹시 북한에서 흘러온 돈이 아닌가 싶어 그대로 뒀다고 하더라.”(김성문 부산민언련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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