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
예고편의 생명 '사운드' : 소리를 둘러싼 수수께끼 |
예고편은 사운드(음악과 음향)가 특히 중요하다. 90분이 넘는 영화를 1~2분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청각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다. 많은 예고편 제작자들은 좋은 예고편의 조건으로 사운드를 두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자기 영화를 관객에게 좀더 세게 광고하고 싶어하는 영화 제작자들은 당연히 예고편의 사운드가 크고 자극적이길 원한다. 그러나 소리의 크기가 일정량을 넘어서면 관객들이 괴로워한다. 이런 폐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한국도 예고편에 사운드를 입히는 업체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음량의 상한 규제선을 정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 라이브톤, 블루캡, 웨비브랩 등 20개 업체가 지난 2003년말 모여 정한 이 상한선(LEQ값)은 85spl(사운드 프레셔 레벨)이다. 이 상한선은 영화 본편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듣기 힘들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영화라면 관객이 들지 않을 테니까 제작자들이 알아서 조절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운드와 관련해 생기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음악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에 까는 방식의 예고편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영화 예고편 제작비의 규모 안에서 공포, 액션, 공상과학 등의 장르 영화의 질감을 전하는 효과음을 별도로 만들어낼 사운드 디자인 비용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본 영화에 쓰이는 효과음을 예고편에 따서 쓰려고 해도, 본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이뤄지기 전에 예고편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그러다보니 분위기에 맞는 음악 한 곡을 선곡해 죽 흐르게 하는 방식이 잦아지고 있다.
내레이션을 쓰지 않는 것도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한 특징이다. 몇몇 코미디 영화의 예고편을 빼고는 한국 영화 예고편에서 대사와 별도로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걸 보기 힘들다. 미국 영화 예고편에서의 내레이션은 익숙한데, 한국어로 하는 내레이션이 어색하다고 여기는 충무로의 풍토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 영화의 예고편 하면 바로 떠올리는 돈 라폰테인 같은 성우가 한국에는 없다. 영화의 제목을 낮은 저음으로 무게 잡아 한번 읽어주고, ‘커밍 순’ ‘디스 섬머’ 같은 말을 들려주는 돈 라폰테인을 흉내낸 한국 영화 예고편이 있기는 있었다. <낭만자객> 예고편의 끝부분에는 영어식 억양이 섞인 ‘낭만자객’이라는 네 글자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 내레이션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영어로 된 제품명이나 회사 상호를 한번씩 읽어주는 일을 도맡아 하는 미국인 스톰버가 맡았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살면서 의 디제이를 했던 그는 한국 영화 예고편의 해외 버전에서 제목을 읽는 내레이션을 몇차례 맡기도 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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