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뿌리 돌아보며 성숙해진 느낌” “소설이 어려워졌다고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뭐랄까, 진지한 재미 같은 걸 이번 소설에 담았다고 생각해요. 김영하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독자도 이런 소설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나 할까요.” 은희경(45)씨가 새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문학동네)을 내놓았다. “작년 봄에 연재를 마치고 나서도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계속 만지작거렸어요. 처음보다 얘기가 커져서 그걸 감당하고 조율하느라 끙끙 앓다시피 했죠. 끝내고 나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소설 다시는 안 써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 쓰면서 내가 많이 컸구나 하는 대견함도 들더군요.” 연재를 하는 동안 작가는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2002년 7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 객원연구원 자격이었다. “공식적인 일은 없었어요.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책 읽고 여행하고 소설을 썼죠. 자연이 좋아서 달리기를 많이 했어요. 8㎞ 대회에 두 번 나갔어요. 다음에는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고, 언젠가는 마라톤 완주도 해 보고 싶어요.” <비밀과 거짓말>은 은희경씨의 출세작인 장편 <새의 선물>과 마찬가지로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보낸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새의 선물>의 주인공이 열두 살 소녀 진희였던 데 비해 이번 소설에서는 영준과 영우 두 남자형제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거기에다가 그들의 아버지인 건설업자 정정욱, 다시 정욱의 아버지인 정성일 세대로까지 이야기는 거슬러올라간다.
“세 권의 장편이 될 걸 한 권에 압축해 담느라고 글쓰는 게 더 힘들었어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각각 연루된 집안의 비밀이 첫 번째 이야기이고, 성격이 다른 형제 영준과 영우의 갈등과 대치가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영화감독이 된 영준이 영화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도회의 일들이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새의 선물>이 깜찍한 문제제기 정도였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질문이 좀 더 깊어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도 더 치밀하고 두터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한정된 분량에 담자니 일쑤 생략과 암시를 구사하고, 수수께끼를 풀고 퍼즐을 맞추는 식의 ‘두뇌 게임’을 요하는 소설이 되었다. “고향과 아버지로 상징되는 인습과 제도적 억압을 거부한다는 게 <새의 선물>을 낸 10년 전 저의 ‘자기 선언’이었죠.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부친상을 당하면서 나라는 존재의 뿌리랄까 근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 청춘기의 치열한 부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력한 회귀도 아닌, 어떤 고요함에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고향과 성장기에 관한 얘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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