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과학과 동아시아 담론 하나돼야” “최근 동남아시아를 휩쓴 지진 해일을 포함한 생태 위기, 문명의 위기 속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제까지 문명을 이끌어 온 구미의 과학적 추론 능력이 동아시아 담론과 결합한다면 지구 전체의 대혼돈을 극복할 방도가 나서지 않을까요.” 신년 벽두에 새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을 낸 시인 김지하(64)씨가 4일 낮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동서와 고금, 과학과 종교, 역사와 철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예증과 논거로써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생명과 평화라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새로운 문명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원형이랄까 패러다임이 바로 동아시아, 좀 더 좁히면 남북 공동의 새 비전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죠. 왜 우리냐? 우리 민족에게는 ‘한’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은 ‘하나’라는 개별성이자 ‘온’의 전체성입니다. ‘한’은 또한 정치적 주체이자 우주의 주동자라 할 수 있죠. ‘한’의 본질은 혼돈적 질서, 즉 ‘카오스모스’(chaosmos)이고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김씨는 구체적으로는 2002년 월드컵과 촛불시위에서 분출된 젊은이들의 역동성에 기대를 건다고 밝혔다. 월드컵 세대 혹은 촛불 세대의 특징을 ‘밀실의 네트워크’로 설명한 그는 개체를 중시하면서 그 속에서 전체성을 담보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야말로 앞으로 추구해야 할 ‘탈중심적 그물망’과 통하는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이후 글과 행동으로 생명운동과 신문명운동을 벌여 온 김씨는 “이번 산문집으로 내 얘기는 끝나는 것이고 다음은 후배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나는 동화 쓰고 그림 전시하고 진짜 허름한 시도 쓰며 살려 한다”고 말했다. “옥살이 하고 건강 챙기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아이들 뒷바라지 위해 돈을 벌려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월드컵 응원 때의 3박자와 2박자가 어우러지는 엇박자, 치우 신화, 태극 등 세 가지 주제를 동화로 쓰면 돈이 되지 않겠느냐고 농 삼아 묻기도 했다. “4·19 세대인 우리는 막상 4·19 당시에는 그게 혁명인 줄 아무도 몰았어요. 마찬가지로 붉은악마들도 자신들이 한 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새로운 문명을 열어젖힐 가능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걸 부디 젊은이들이 알아 줬으면 합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문화일반 |
‘생명과 평화의 길’ 산문집 펴낸 김지하 시인 |
“서구과학과 동아시아 담론 하나돼야” “최근 동남아시아를 휩쓴 지진 해일을 포함한 생태 위기, 문명의 위기 속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제까지 문명을 이끌어 온 구미의 과학적 추론 능력이 동아시아 담론과 결합한다면 지구 전체의 대혼돈을 극복할 방도가 나서지 않을까요.” 신년 벽두에 새 산문집 <생명과 평화의 길>(문학과지성사)을 낸 시인 김지하(64)씨가 4일 낮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동서와 고금, 과학과 종교, 역사와 철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예증과 논거로써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생명과 평화라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새로운 문명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원형이랄까 패러다임이 바로 동아시아, 좀 더 좁히면 남북 공동의 새 비전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죠. 왜 우리냐? 우리 민족에게는 ‘한’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은 ‘하나’라는 개별성이자 ‘온’의 전체성입니다. ‘한’은 또한 정치적 주체이자 우주의 주동자라 할 수 있죠. ‘한’의 본질은 혼돈적 질서, 즉 ‘카오스모스’(chaosmos)이고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김씨는 구체적으로는 2002년 월드컵과 촛불시위에서 분출된 젊은이들의 역동성에 기대를 건다고 밝혔다. 월드컵 세대 혹은 촛불 세대의 특징을 ‘밀실의 네트워크’로 설명한 그는 개체를 중시하면서 그 속에서 전체성을 담보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야말로 앞으로 추구해야 할 ‘탈중심적 그물망’과 통하는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이후 글과 행동으로 생명운동과 신문명운동을 벌여 온 김씨는 “이번 산문집으로 내 얘기는 끝나는 것이고 다음은 후배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나는 동화 쓰고 그림 전시하고 진짜 허름한 시도 쓰며 살려 한다”고 말했다. “옥살이 하고 건강 챙기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아이들 뒷바라지 위해 돈을 벌려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월드컵 응원 때의 3박자와 2박자가 어우러지는 엇박자, 치우 신화, 태극 등 세 가지 주제를 동화로 쓰면 돈이 되지 않겠느냐고 농 삼아 묻기도 했다. “4·19 세대인 우리는 막상 4·19 당시에는 그게 혁명인 줄 아무도 몰았어요. 마찬가지로 붉은악마들도 자신들이 한 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새로운 문명을 열어젖힐 가능성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걸 부디 젊은이들이 알아 줬으면 합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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