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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31 18:19 수정 : 2005.01.31 18:19

우리말에서 부정을 나타내는 ‘아니/안’은 셈말 앞에 오지 않는다. 영어의 ‘안/아니’인 낫(not)은 셈말 앞에도 올 수 있다. 그래서 ‘안 모두’ ‘안 하나’ 같은 표현이 나타난다. 나아가 부정어와 셈말(부정관사)과 명사가 합쳐 하나로 줄어붙은 말까지 나타난다.

영어의 ‘안 한 물건’(not a thing=nothing)은 우리말로는 ‘아무것도 ~ 안’이, ‘안 한 사람’(not a man=nobody)은 ‘아무도 ~ 안’이 된다. 앞서 들춘 내용들을 바탕으로 영어와 우리말 낱말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라.

서양말인 이 낱말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유명한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 이야기의 재미가 나온다. 사람 잡아먹는 거인한테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면서 꾀쟁이 오디세우스는 자기 이름이 ‘우티스’(Outis)라고 말한다. 영어로는 ‘노맨’(Noman=Nobody)이다. 큼직한 생올리브 통나무 끝을 깎아 뾰족하게 만든 것을 불에 달구어 여럿이 힘을 합쳐 술 취한 거인의 외눈에 쑤셔박자,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거인의 친구들이 누가 괴롭혔느냐고 묻는다. “우티스가 나를 찔렀다”고 거인이 대답하자 친구들은 “아무도 안 찔렀다니 그럼 우린 간다”며 돌아가 버린다. 서양 사람들이 다 웃음을 터뜨리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덤덤하다. 우리말에 ‘우티스’에 해당하는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맥의 핵심은 누군가 그를 찔렀고, 그 사람 이름이 ‘우티스’인데, 친구들은 “아무도 그를 안 찔렀다”로 알아들었다는 데 있다.

이것을 “아무도 안이[아니] 나를 찔렀다”로 옮기면 우리말로 호메로스의 문맥을 그런 대로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인을 찌른 사람의 이름 ‘우티스’는 우리말로는 ‘아무도 안’이 되는 셈이다.

안인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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