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3 10:29
수정 : 2019.06.14 02:30
|
문화재청과 경찰이 도굴범한테서 압수한 신안 해저 불법인양 도자기들.
|
1980년대 도굴꾼이 훔쳤던 도자 유물
문화재청, 경찰이 협업수사해 회수
|
문화재청과 경찰이 도굴범한테서 압수한 신안 해저 불법인양 도자기들.
|
|
13일 공개된 신안 해저도굴 유물들. 중국 푸젠성 건요 가마에서 만든 북송시대의 고급 흑유잔들.
|
보물을 손에 넣은 소장자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다. 오직 팔기 위해서.
그의 집 안 장롱과 서랍 등은 보물의 주된 보관처였다. 700~800여년 전 만든 중국산 고급 도자기들이 포장되어 숨겨진 채 잠자고 있었다. 도굴꾼이 1980년대 초 전남 신안 바닷속에서 몰래 끄집어 올린 것들이었다. 그는 이 장물들을 입수한 뒤 전혀 손대지 않았다. 문화재 도굴·도난범의 공소시효(10년)를 넘기고 나서도 훨씬 오랫동안 묵혀놨다가 적절한 시기에 내놓아 매각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 도굴되거나 도난당한 문화재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는 때만을 끈기있게 기다린 경찰과 문화재청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대전경찰청은 13일 ㅎ(63·서울)씨를 매장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그한테서 회수한 신안 해저 도굴품 57점을 공개했다. 장물들은 신안군 증도 앞바다(국가사적) 해저에 가라앉은 14세기 중국 원나라 침몰선(신안선)에 실려 있던 적재품들. 청자 구름·용무늬 큰접시, 청자 모란무늬병, 청자 물소모양 연적 등 당대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실증하는 도자 유산들로 꼽힌다. 특히 높이 7.5㎝의 흑유잔은 중국 송대 푸젠성 건요 가마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명품으로 평가돼 눈길을 모았다. 검은 유약을 칠한 표면에 토끼털 모양 무늬가 남아 ‘토호잔’으로도 불리우는 수작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전문가는 “중국에도 이번에 압수한 흑유잔과 같은 크기와 상태를 지닌 작품을 소장한 기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 금액을 따지긴 어렵지만 최소 수십억원을 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저장성 용천요 가마에서 만든 청자구름용무늬큰접시(청자양각쌍룡문대반). 조사단이 신안 증도면 방축리 도덕도 앞 유물매장 해역에서 공식인양한 청자대반과 동일한 모양의 명품으로 확인됐다.
|
|
회수된 신안해저 도굴유물들. 중국 송나라 원나라 시대의 청자 백자류들이다.
|
|
저장성 용천요 가마에서 만든 청자병들.
|
ㅎ씨는 1983년께부터 유물을 거처에 숨겨왔으며, 최근 들어 팔 곳을 찾아다니다가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조사결과 회수된 장물들은 80년대 도굴범들이 증도면 앞바다에서 사설 잠수부를 고용해 몰래 끄집어올린 뒤 빼돌린 신안선 해저유물들이었다.
문화재청과 경찰은 “ㅎ씨는 신안선 유물을 입수한 뒤 1983년께부터 거처에 숨겨왔으며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유물들을 국외 반출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ㅎ씨는 애초 중국 쪽 반출을 꾀했으나 공항 검색이 까다롭다는 것을 알게 되자, 유물을 갖고 일본에 건너간 뒤 중간 브로커를 만나 팔 뜻을 내비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ㅎ씨는 경찰에서 압수품을 두고 “집안에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경찰은 허위진술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과 물증들이 있다. ㅎ씨가 갖고 있던 도자기들을 신안선에서 나온 진품이라고 밝혔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이 나왔고, 지인들 가운데 신안선 도굴 혐의로 처벌받은 이가 확인됐다. 또,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 압수한 도자기 57점은 신안선 해역에서 당국이 공식 인양한 도자기류와 모양새가 거의 똑같았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 가마에서 생산된 것이 확실하다는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경찰은 ㅎ씨가 80년대 신안 해역의 도굴 작업에 가담하거나, 도굴 뒤 인양된 유물을 수중에 넣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압수된 신안해저 도굴 유물들.
|
|
13일 대전경찰청에서 공개된 신안 해저 도굴유물들의 모습. 취재진이 영상과 사진을 찍고있다.
|
증도 앞바다의 신안 해저 유물 매장 해역은 1975년 어부들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리면서 처음 실체가 드러난 뒤 8년간의 지속적인 수중 발굴로 14세기 동아시아 교역 유물들의 보고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 문화재관리국과 군 당국은 11차례 수중 발굴조사를 벌였다. 침몰선의 주요 선체, 잔해와 함께 청자, 백자, 흑유자기 등의 도자기와 토기류 2만여점, 석재료 40여점, 금속류 720여점, 동전 28톤 등의 막대한 유물들을 건져 올렸다. 배에서는 이런 수하물들과 같이 실렸던 나무쪽 물표(짐표)도 나왔는데, 출항지·도착지가 먹글씨로 표기되어 있었다. 판독한 결과 침몰선은 중국 경원(慶元:현재의 닝보항)에서 출항해 일본 하카다와 교토의 큰 절 토후쿠지(東福寺)를 향해 항해하다가 1323년께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교역선임이 밝혀졌다.
신안선 침몰 해역은 서해 남부의 중요한 옛 연안항로이며, 7~8세기 이후 한·중·일 교역의 중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회수된 고급청자와 흑유를 포함한 신안 해역의 인양도자기들은 대부분 1320년대 중국 절강성 지역과 강서성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들이다. 청자는 중국 저장성 용천시를 중심으로 한 용천요 가마, 백자와 청백자는 중국 장시성 경덕진요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각각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신안 해저 발굴은 8년간 진행된 장기 작업이어서 당시 도굴꾼들은 조사단의 수중 발굴 작업이 쉬어가는 틈을 노렸고, 밤에 잠수부를 데려와 도굴하는 사례가 적지않았다”면서 “회수한 도자기들은 신안 해저발굴의 숨은 흑역사를 실증하는 유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대전/송인걸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