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8 18:15
수정 : 2019.06.1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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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엇갈리는 진위판정을 내려 논란을 빚었던 작고작가 도상봉(1902~1977)의 12호(50×61㎝)짜리 라일락꽃 그림. 당시 화랑협회는 가짜로, 감정협회는 진품으로 판정했다.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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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화랑가 감정도맡아온 평가원 해산
감정센터-화랑협회 감정위로 분열
평가원 축적 자료 열람 소송전 벌어져
엇갈린 진위 판정 혼란 불가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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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엇갈리는 진위판정을 내려 논란을 빚었던 작고작가 도상봉(1902~1977)의 12호(50×61㎝)짜리 라일락꽃 그림. 당시 화랑협회는 가짜로, 감정협회는 진품으로 판정했다.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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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의 진품 여부와 평가액 따위를 가늠하는 ‘감정’을 놓고 화랑가에 해묵은 ‘감정 싸움’이 다시 불붙었다. 국내 근현대 주요 미술품의 감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한국화랑협회와 최근 사설 감정기관을 새로 만든 일부 화랑업자·미술계 딜러들 사이에 험궂은 소송 공방전이 시작됐다.
지난 10여년간 화랑가에서 가장 유력한 미술품 감정평가기관으로 존속해온 주식회사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지난 3월 주주들의 해산 결정으로 사라지고, 새 기관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이하 센터)가 등장한 게 갈등을 재연시킨 배경이 됐다.
국내 미술품 감정 제도의 시초는 1980년대 초반 시작한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였다. 그러나 일부 화랑주와 미술학계 전문가들이 화랑협회 감정 시스템이 고루하다며 2002년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를 만들었고, 감정협회의 활동을 행정·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식회사 조직으로 평가원을 열었다.
감정협회·평가원은 이후 5년간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와 별도로 감정을 진행하면서 근대 화가 도상봉의 꽃 그림에 대해 엇갈리는 진위 판정을 내리는 등 마찰을 빚다가, 2007년 화랑협회가 평가원 감정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쪽으로 협약을 맺었다. 12년간 협약을 갱신하며 일원화됐던 감정기관은 올해 초 다시 갈라지는 곡절을 맞았다. 평가원의 주식 주요 지분을 가진 임명석(우림화랑), 송향선(가람화랑) 대표 등 일부 화랑업자들이 감정시스템 혁신을 명분으로 다른 미술시장 관계자와 차세대 감정 전문가들을 끌어들여 주식회사 형태의 또다른 영리형 감정회사(센터)를 3월 23일 발족시킨 것이다.
앞서 평가원 주주들은 지난해 9월 주주총회를 열어 주식회사인 평가원을 해산하고 공공적인 목적의 사단법인 감정기구로 전환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으나,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평가원은 지난 3월 18일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해산됐으나, 영리를 좇는 주식회사 형태를 유지한 센터가 며칠 뒤 곧장 발족하자 내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사단법인이 아닌 센터 설립의 정당성을 놓고 내홍이 일어났다. 더욱이 지난달 초부터 감정업무를 시작한 센터 쪽은 앞으로 감정작업에서 과거 협업해온 화랑협회 쪽을 배제하고, 평가원이 축적해온 감정 관련 자료도 일체 공유하지 않고 폐기한다는 방침을 내비쳐 화랑협회와의 갈등도 불렀다.
화랑협회는 물론, 평가원에 주주로 참여했던 엄중구 샘터화랑 대표 등 일부 화랑업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우선 화랑협회 쪽은 다음달부터 산하 감정위원회 활동을 12년만에 재개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21일 발표회견을 열 예정이다. 평가원에 쌓인 감정자료 및 회계자료 열람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도 지난 4일 법원에 냈다. 엄중구 대표 등 평가원 주주 3명은 평가원 청산인인 임명석 대표가 센터의 주요 주주·이사로도 참여해 청산인 자격이 없다며 해임청구소송을 지난달 20일 제기했다. 엄 대표 등은 센터 건립 근거가 애초의 사단법인화 취지를 거스른 것인만큼 원천무효란 주장도 펴고있다. 다른 화랑주들도 지난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 미술품장터를 돌며 평가원 감정자료 폐기 방침 철회와 자료 공유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다.
반면, 센터 쪽은 미술품 감정도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맞서는 입장이다. 정준모·이호숙 센터 대표는 18일 서울 북촌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평가원 해산과 센터의 발족은 전혀 관계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감정도 앞으로는 선의의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광수, 서성록씨 등의 평론가와 시장 관계자 다수를 감정위원으로 확보하거나 초빙을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웅철 화랑협회장도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젊은 화랑주와 학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새 감정위원 섭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혀 두 기관 사이에 물밑 세 대결까지 벌어지는 양상이다. 서울 인사동 화랑가에서 만난 미술계 한 전문가는 “역사에 남을 시각문화유산을 선별하는 공공적 성격의 작업이 감정인데, 일부 업자들이 돈벌이 위주의 영리사업 성격을 강화하면서 갈등이 재발했다고 본다”면서 “화랑협회와 센터 쪽이 감정 주도권을 다투다가 한 작품에 엇갈리는 진위 판정을 내려 혼란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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