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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4 16:01 수정 : 2019.06.24 21:24

진안군 도통리 증평마을에서 확인된 2호 청자가마터의 전경.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바뀌어간 흔적들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초기청자 생산양상의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가마터 사적지정 예고
고려청자 기원의 수수께끼 간직한 유적

진안군 도통리 증평마을에서 확인된 2호 청자가마터의 전경.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바뀌어간 흔적들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초기청자 생산양상의 단면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진안군은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라고 세간에서 흔히 불러온 전라도 동북쪽 험한 산악지역이다. 이 진안군 산골짝에 1000여년을 묻혀있다가 최근 자취를 드러낸 옛 청자 가마터가 조만간 국가사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를 국가지정 사적으로 24일 지정 예고했다고 발표했다. 청은 “초기청자의 발생과 변천을 보여주는 도자사 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도통리 청자 가마터는 군내 백운면 내동산 서북쪽 산줄기 끝자락인 중평마을에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을 비롯한 문화재기관들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 시굴·발굴조사를 벌여 10∼11세기 초기청자가 만들어진 가마터 두곳을 찾아냈다. 도통리 발굴은 한국 도자사 연구에 새로운 논란의 물꼬를 텄다. 발굴 전까지는 한반도 초기 청자의 시원을 고려의 옛도읍 개성 부근의 경기, 황해도 가마터로 꼽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남도 산골 오지인 도통리에서 초기 청자를 굽던 1000여년전 대형 가마터가 확인되면서 이 유적이 국내 최고의 청자 생산지일 수도 있다는 가설이 등장했고, 정설은 도전을 받게 됐다.

진안 도통리 유적이 있는 증평 마을 전경.
가마 내부에서 출토된 햇무리굽 청자들.
이런 청자 기원 논란과 관련해 주목되는 유적이 2호 가마터다. 길이 43m로, 호남 권역에서 가장 큰 초기청자 생산유적이다. 애초 가마 벽체를 벽돌로 쌓았다가 내벽을 진흙과 갑발(도자기를 처음 구울 때 통째로 담는 큰 그릇)을 활용해 개보수하면서 청자 생산을 지속한 흔적이 확인된다.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뒤바뀐 한반도 초기청자 가마의 변천상을 단적으로 실증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자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평가된다. 1호 가마터(길이 13.4m)는 진흙으로 쌓아 2호보다 시간이 좀더 지난 후대 양상을 보여준다. 출토유물로는 해무리굽이 달린 접시(완)와 잔, ‘大(대)’자 명문이 새겨진 청자와 고누놀이판이 새겨진 갑발, 꽃무늬 접시 등이 다량의 벽돌 등과 함께 나왔고, 도자기 굽는 과정에서 쓰는 요도구들도 같이 출토됐다. 중평마을 전역의 땅 밑에는 청자조각과 갑발 조각 등이 널리 흩어져있고, 마을 일부 지층에는 대규모의 요도구 퇴적층도 남아있어 앞으로 추가 발굴의 성과도 주목된다. 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모은 뒤 문화재위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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