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6 18:04
수정 : 2019.06.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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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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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음반에 자전적 의미 담아
노래로 ‘내 갈 길을 가겠다’ 외쳐
주변 시선·평가에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 여성으로 성장과정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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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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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전반에 ‘걸크러시’가 유행처럼 번진다.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돌들이 먼저 다가가서 쟁취하고, 내 맘대로 살겠다고도 외친다. 그런 모습에 여성 팬들이 환호하며 ‘언니 연대’를 구축한다. 이런 걸크러시 문을 열어젖힌 건 누가 뭐래도 브라운 아이드 걸스(브아걸)다. “모든 걸 걸고 널 갖겠다”(‘아브라카다브라’)고 외치는 모습은 ‘청순가련형’ 가수들이 인기던 시절 파격 그 자체였다.
그랬던 원조 ‘센 언니’가 ‘더 강한 나’가 되어 돌아왔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 제아가 지난 21일 발표한 솔로 음반 <뉴셀프>(새로운 자신)는 사랑 앞에 당당함을 넘어 ‘주체로서의 여성’을 얘기한다. 최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난 제아는 “주체로서의 여성이 음반을 관통하는 주제”라며 “외부적인 요인, 시선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이들이 많다. 주변 평가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걸 싹둑 잘라내지 못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런 이들에게 내 생각대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록곡 ‘디어 루드’, ‘뉴셀프’, ‘마이 월드’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듯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디어 루드’는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뉴셀프’는 그런 과정에서 더욱 강해지는 나를 얘기한다. ‘마이 월드’는 앞으로 내 스스로 인생을 이끌어나갈 거라는 다짐이다. 제아가 힘 있는 목소리로 “난 내 갈 길을 가겠다”(‘뉴셀프’)고 외치는 걸 듣고 있으면 에너지가 솟구친다. 그는 “내 노래를 듣고 힘을 얻으면 좋겠다”며 “언니 또는 친구로서 ‘더 이상 안 힘들어도 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호소가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데는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음반에는 작곡만 참여했지만, 작사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에 풀어냈다. “저 역시 예전에는 ‘그게 너와 어울릴까?’ ‘넌 이게 맞아’ 하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에 휘둘려 하고 싶은 걸 못한 적이 많았어요. 음악적인 면에서도 눈치를 많이 봤어요. 직접 부르고 싶어서 브리티시 팝 느낌의 곡을 만들었는데 ‘그게 너한테 어울리냐’는 얘기를 듣고 다른 가수에게 준 적도 있죠. 나름 솔직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저도 100% 주체적으로 살진 못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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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나로 거듭나자고 결심한 데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뒤 우울증까지 앓았어요.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고민하게 됐고. 소중한 사람, 소중한 것이 명확해졌어요. 나를 갉아먹는 것들을 쳐낼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제아는 시원시원한 성격에 남을 많이 배려해 동료들 사이에선 평소 기댈 수 있는 ‘언니’로 통한다. 2017년부터 웹예능 <쎈마이웨이>에서도 래퍼 치타와 함께 상담을 해주고 있다. 뒷담화를 일삼는 직장 동료 때문에 고민하거나, 외모 품평을 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는다. 주요 타깃층인 18~24살 여성을 넘어 이제는 남자들도 상담을 해올 정도다. 현실에서도 후배들의 고민상담사다. 대중에게 소비되며 상처 입는 후배들에게 속 시원한 조언도 한다. 그는 “나만의 ‘선’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신인 때는 불합리한 게 많아도 보통 말을 못 하잖아요. 자기 기준이 명확해야 듣는 사람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이걸 바로 지르지 말고 내 일을 확실히 한 뒤에 정리해서 조목조목 얘기하면 통하더라고요.” 그는 “그나마 우리가 활동할 때와 비교하면 노래 가사 등 지금 가요계는 많이 달라졌는데 건강한 변화”라며 “해야 될 말과 안 해야 될 말의 기준점이 세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의 사랑, 관심을 받는 아티스트들은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사회에 건강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브아걸이 불을 지피고 제아가 발산한 ‘새로운 자아상’은 대중음악의 결을 더욱 윤기있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제아는 “특별한 게 아니라 쉽게 쉽게 소비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6년 데뷔해 어느덧 14년차 선배 가수가 된 브아걸은 올해 안에 새 음반도 내놓는다. 걸그룹 수명이 대략 7년쯤이라는데 그 갑절의 삶을 지탱해온 브아걸은 존재 자체가 상징적이다. “누군가 제게 그더러라고요. ‘선배님, 버티고 있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후배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니 더 열심히 음악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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