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30 11:16
수정 : 2019.06.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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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1일(현지시각)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 현장. 괴테인스티투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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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 현장
인간 중시하는 고전주의 입각
최첨단 기술시대 근원적 성찰
AI와 인간은 친구가 가능한가?
사회 고립 자초하지는 않는가?
공연·영상 한국작가 4명 참가
“기술에 대한 철학·담론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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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1일(현지시각)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 현장. 괴테인스티투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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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바이마르는 인구 6만여명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문화적 가치로 보면 존재감이 대단하다. 19세기 초 대문호 괴테, 극작가 실러, 철학자 니체, 작곡가 리스트 등이 동시에 활동한 바이마르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철학과 예술이 꽃핀 독일 고전주의의 메카였다. 세계 최초로 소유권의 사회성과 인간의 생존권을 명시해 현대 헌법의 전형이 된 바이마르 헌법을 비롯해 건축과 공예,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통해 현대 건축·디자인의 근간이 된 바우하우스가 1919년 이곳에서 생겨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9~21일(현지시각) 이곳에서 괴테인스티투트(독일문화원) 주최로 열린 ‘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 역시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 끼칠 영향을 근본적으로 다루며 바이마르가 지닌 문화적 상징성을 더했다.
■ 고전주의 메카에서 열린 문화 심포지엄
심포지엄을 마련한 괴테인스티투트는 독일 언어와 문화를 세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1951년 정부 지원을 받아 설립한 비영리 기관이다. 세계 159개 지부가 있으며, 한국 지부인 주한독일문화원은 1968년 설립됐다. 2016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마련된 문화 심포지엄은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 예술가, 문화계 종사자 등 300여명을 초청해 생각을 나누는 자리다. 올해 심포지엄 주제는 ‘경로의 재탐색’으로, 급속한 기술 개발이 사회·문화·경제에 가져올 근본적 변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심포지엄 이름에 붙은 ‘문화’는 예술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양식 전반을 아우른다. ‘젠더와 기술’ ‘기계에는 어떤 도덕이 필요한가?’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편견’ ‘민주주의의 죽음’ ‘디지털 세대의 정치’ ‘일자리의 미래’ ‘음악과 영화의 미래’ 등 다양한 주제의 45개 세션이 펼쳐졌다. 인공지능, 로봇 같은 최첨단 기술이 우리 삶을 바꿔나가는 시대에 인간을 우선시하는 고전주의 정신에 입각해 근원적인 성찰을 해보자는 취지가 각 세션에 담겨 있다. 큰 도시를 놔두고 왜 바이마르를 택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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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현지시각)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 개막식 애프터파티 현장. 괴테인스티투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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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은 애인이 될 수 있을까?
가장 흥미를 일으킨 세션은 인공지능·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도구, 친구, 애인, 배우자?’였다. 노르웨이의 사용자경험(UX) 설계 전문가 카렌 돌바는 ‘따뜻한 기술’을 통해 인간이 고립에서 벗어난 사례를 설명했다. 암 투병으로 3년간 집에만 있어야 했던 소년이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바깥세상을 간접 체험한 것이 대표적이다. 로봇은 소년 대신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소년은 집에서 태블릿피시로 영상을 통해 소리를 듣고 말을 했다. 소년은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이 돼준 로봇을 친구처럼 여기며 둘이 함께 노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일본 작가 마쓰토야 마리는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보컬로이드 캐릭터 하쓰네 미쿠의 사례를 들었다. 2007년 개발된 하쓰네 미쿠는 음반을 내고 홀로그램 콘서트를 하며 아이돌 팝스타가 됐는데, 이젠 인공지능 스피커와 결합해 가상의 애인 노릇을 한다. 아침에 잠을 깨워주고, 낮에는 휴대전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집에 오면 불을 밝히고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해 35살 남성 곤도 아키히코는 10년 동안 사랑해온 하쓰네 미쿠와 실제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 같은 관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국의 인공지능·로봇 전문가 노엘 샤키는 전쟁터의 군인과 폭탄 제거 로봇의 사례를 들었다. 군인은 자신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교감하게 되는데, 로봇이 폭탄을 제거하다 폭발사고를 당할 경우 큰 감정적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 인간이 로봇과의 교감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돼 오히려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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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1일(현지시각) 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문화 심포지엄 바이마르 2019’에 참가한 동아시아 작가들이 마지막날 모여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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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참여 작가들의 깨달음과 고민
심포지엄에는 공연·영상 분야의 한국 작가 4명도 참여했다. 김지선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공연예술’ 세션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그는 바이마르로 오기 직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알고리즘의 정치학’ 페스티벌에서 인공지능 로봇끼리 대화를 나누는 공연을 선보였다. 그는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기술의 발전 정도보다 작가의 기획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작가들은 이번 심포지엄이 거시적 담론을 제시한 데 대해 놀라워했다. 서현석 작가는 “다른 테크놀로지 관련 행사에 가보면 기술을 도구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선 정치·사회·철학적으로 변화를 바라보려 한다는 점이 신선했다”고 말했다. 김보람 작가는 “정부 기관과 재단 등이 기술을 활용하는 예술가를 지원할 때 결과물만 중시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안 나온다. 그에 앞서 기술에 대한 철학과 담론을 만드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박지선 공연 프로듀서는 “예술가는 동시대에 계속 질문을 던지는 사회운동가여야 한다. 사회가 속도감 있게 갈 때 다른 시각으로 예민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다. 그런 고민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바이마르/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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