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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2 17:33 수정 : 2019.07.02 20:04

정면부에 돌출된 출입문 지붕을 좀더 가까이서 촬영한 모습. 지붕 가장 위쪽에 세개의 꽃잎마다 각 두개씩 꽃술이 뻗어나간 오얏꽃 무늬 장식물이 보인다. 지붕 안쪽 천장 부근에도 오얏꽃잎을 확대한 듯한 무늬를 볼 수 있다.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한·일 해상 교통요충지이자
동서양의 양식 결합한 수작
신공항 터 지목된 위치 탓에
등대에 닥쳐올 격변의 미래 ‘착잡’

정면부에 돌출된 출입문 지붕을 좀더 가까이서 촬영한 모습. 지붕 가장 위쪽에 세개의 꽃잎마다 각 두개씩 꽃술이 뻗어나간 오얏꽃 무늬 장식물이 보인다. 지붕 안쪽 천장 부근에도 오얏꽃잎을 확대한 듯한 무늬를 볼 수 있다.
“저기 지붕 위에 오얏꽃 보입니까? 그땐 대한제국이 살아있었습니다! ”

올해로 건립 110돌을 맞은 부산 가덕도 등대(부산시 문화재)의 출입문 앞에서 연구자 석영국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1일 낮 답사단과 함께 여기에 닿자마자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킨 건 등대정면 출입문을 덮은 맞배지붕 위 장식물이었다. 세개의 꽃잎에 각각 두개의 꽃술이 뻗어간 단아한 꽃 장식. 대한제국의 상징 오얏꽃이 맞다. 지붕 안쪽 천장 부근에도 오얏꽃의 꽃잎, 꽃술을 확대한 무늬가 보였다.

믿기지 않았다. 한반도 동남쪽 부산의 서쪽 변두리섬 가덕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대한제국 건축의 마지막 흔적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가덕도 등대는 1909년 12월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날 첫 점등을 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까지 대한해협을 비추는 임무를 93년간 묵묵이 맡아왔다. 해양수산부 항로표지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석씨의 안내로 돌아본 등대 내외부의 얼개는 옛 등대건축의 현장 박물관과 다를 바 없었다.

대한제국 건축의 마지막 흔적으로 꼽히는 가덕도 등대의 전경. 사각형 평면에 벽돌로 벽을 쌓고 그위에 팔각형 등탑을 올렸다. 외벽과 등탑, 등롱, 굴뚝, 난간 등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덕도 등대는 등탑 외에 관리직원의 숙소와 부엌, 목욕탕, 화장실을 한 건물 안에 일체로 갖춘 혁신적인 얼개가 가장 주목되는 특징이다. 이는 국내 근대 등대들 가운데 유일한 사례다. 인천 팔미도 등대나 포항 호미곶 등대 등 국내의 유명한 근대 등대들은 등탑만 외따로 있고 주거 시설동은 후대 분리된 채 지어진 것 밖에 없다. 내부를 살펴보니, 부엌의 큰 가마솥과 목욕탕의 탕물을 데우는 목욕솥, 일본식 화장실과 다다미 깔린 방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 과거 외로이 등대를 지켰던 등대지기들의 고단한 삶을 엿보는 듯했다. 건물 안의 좁은 계단과 사다리를 올라가 위쪽 등탑의 등명등 시설과 이를 감싼 돔 유리창 덮개인 등롱을 둘러 보았다. 내외부가 판자와 철제로 만들어진, 등명등 시설을 감싼 등롱 또한 1909년 건립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가덕도 등대는 등탑 외에 관리직원의 숙소와 부엌, 목욕탕, 화장실을 한 건물 안에 일체로 갖춘 혁신적인 얼개가 특징이다. 근대 등대건축물 가운데 유일한 사례다.
유리창 너머로는 기암괴석의 절경인 섬의 동쪽 해벽이 가까이 눈에 잡히고, 멀리 바다안개 사이로는 동쪽 부산 다대포의 산야가 흐릿하게 내다보였다. 남쪽으로는 맑은 날 일본 쓰시마의 풍경이 뚜렷하게 보이고, 서쪽으로는 진해로 빠지는 수로의 배들도 눈에 띄었다. 이 가덕도 남단의 등대 자리가 한국과 일본, 남해안 연근해를 지나는 핵심 해로를 한눈에 굽어보는 최고의 요지이며, 가덕도가 역사적으로 해양 교류의 요충지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조망 자체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등대건축사를 연구해온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말했다. “가덕도 등대는 대한제국이 주체적으로 예산을 들여 해양 기반시설을 건립했음을 보여주는 실체적인 근거로서 의미가 큽니다. 한·일 양식과 근대의 서구 고전양식이 어우러진 한국 등대건축의 숨은 수작으로 국가 사적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덕도 등대 정문과 옛 본체 건물. 정문에 ‘가덕도항로표지관리소’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오른쪽 높은 건물은 2002년 훨씬 큰 규모로 지어진 신등대 등탑이다.
이날 답사는 ‘2019 세계 항로표지의 날’(1일)을 맞아 해양수산부와 한국항로표지기술원이 꾸린 행사 중 하나였다.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국제항로협회(IALA)총회에서 매년 7월1일을 등대를 비롯한 항로표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날로 만들자는 공동선언이 나오면서 올해 첫번째 기념일에 ‘올해의 등대’를 가덕도 등대로 선정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답사행사를 열게된 것이다. 2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국내외 등대연구 성과를 발표 토론하는 학술포럼도 열렸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유·무인 등대 1800여곳 가운데 근대문화유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등대는 23개밖에 되지 않는다. 70~80년대 등대를 정비하고 무인등대를 들이는 과정에서 구한말, 일제강점기 세운 근대 등대 상당수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내력을 지닌 국내 근대등대의 역사에서 최근들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뒤늦게나마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가덕도는 고대부터 중요한 해상 교통의 요지여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정주역사만 6000년이 넘는다. 2000년대초 이곳에서 신석기유적을 발굴한 결과 보기 드문 신석기 시대 섬사람의 인골들이 무더기로 나와 고고학계의 눈길을 모았다. 구한말 러일전쟁 당시엔 일제가 포병시설 등을 건립해 해방 직전까지 군사시설로 운용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최근엔 역사관광지로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등대 유산 못지않게 고대 해상 교류와 일제 강점기의 군사유적지로서도 가덕도의 가치는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등대가 있는 가덕도 남단과 주변 해역은 최근 다시 논란을 빚고있는 동남권 신공항 터로 지목되는 곳이다. 해금강을 방불케하는 등대 앞 해벽의 절경과 오얏꽃 새긴 대한제국 최후의 등대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게될까. 역사의 굽이마다 격랑의 공간이 되었던 섬의 아름다운 풍광도 신공항의 건립 여부에 따라 격변이 불가피할 것이다. 가덕도등대의 알 수 없는 장래를 생각하니 머리 속이 착잡해졌다.

가덕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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