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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클럽 베르크하인 입구에서 손님의 입장 여부를 결정하는 문지기 매니저 스벤을 그린 작품. 이링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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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무조건 클럽이지”
친구 권유로 클럽에 ‘풍덩’
자유·다양성의 상징 ‘베르크하인’
오픈에어형 ‘시시포스’ 2곳에서 밤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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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클럽 베르크하인 입구에서 손님의 입장 여부를 결정하는 문지기 매니저 스벤을 그린 작품. 이링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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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클럽이지.”
만나자마자 제이(J)가 대뜸 말했다. 열흘째 독일 베를린을 여행 중인 그는 이미 클럽 세곳을 다녀왔다 했다. 지난달 말 바이마르에서 심오한 철학적 사유가 넘쳐나는 문화 심포지엄 취재(<한겨레> 7월1일치 21면)를 마치곤, 주말(6월22일)을 맞아 베를린으로 넘어온 터였다. 별다른 계획 없이 유명 관광지나 돌아볼까 하던 내게 제이의 한마디는 맹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이의 베를린 클럽 찬가가 이어졌다. 자신의 삶의 열쇳말이 ‘자유’와 ‘다양성’인데, 둘을 상징하는 도시가 베를린이며 특히 클럽이 고갱이라는 것이다. 베를린 여행이 벌써 네번째이며 클럽도 열곳이나 가봤다는 제이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베를린 클럽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박스형. 우리나라의 흔한 클럽을 생각하면 되는데, 실내 공간에서 음악과 춤을 즐기는 곳이다. 워터게이트, 트레조어, 매트릭스 등이 유명하다. 둘째는 오픈에어형. 강가에 위치하거나 커다란 정원을 갖추고 있어 야외공간 비중이 큰 곳이다. 시시포스, 카터블라우, 어바웃블랭크, 그리스뮐레 등이 유명하다. “마지막 세번째는 베르크하인이야. 그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아. 베르크하인은 그냥 베르크하인이야. 유일무이한 곳이지.” 제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밤 무조건 베르크하인에 가야 해.”
오픈 전부터 벌써 수백미터 줄서기
한국에선 나이로 자른다지만
이곳 입장정책은 ‘문지기 마음’
“춤과 음악을 즐길줄 아는 자”
음악 칼럼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이링이 음원사이트 벅스에 기고한 글을 보면, 베르크하인은 2004년 폐발전소에서 탄생한 테크노 클럽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동베를린 지역에는 버려진 공장, 창고, 건물 등이 넘쳐났다. 예술과 파티를 즐길 줄 알았던 서베를린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파티를 열고 동베를린 사람들과 뒤섞여 어울렸다. 버려진 건물을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날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개조한 곳들이 테크노 클럽으로 발전했다. 그중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 베르크하인이다.
문제는 지명도만큼이나 입장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는 점이다.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가 손님을 가려 받는데, 심하게는 80%가량이 입장 거부를 당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일부 클럽에선 나이가 많으면 자른다지만 이곳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기준은 오로지 문지기 매니저 ‘스벤’만이 안다. 평소엔 사진가로 일하고 베르크하인이 문을 여는 금토일 밤에는 문지기를 하는 스벤은 긴 백발에다 얼굴에 문신과 피어싱을 한 할아버지(?)다. 그는 손님을 보고 들여보낼지 말지를 결정한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베르크하인에 들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글과 영상이 꽤 많다. 검은 옷을 입어라, 출연 디제이를 파악하라, 줄 서서 기다리면서 웃거나 장난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안 된다, 일행이 많으면 힘들다 등등. 제이는 “호기심에 한번 들르는 뜨내기 말고 베르크하인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 춤과 음악을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을 가려낸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나더러 “검은 옷 없어?” 물었다. 검은 옷은 없었다. 가까운 쇼핑몰을 검색했다. 문 닫을 시간이 한시간 남았다. 부랴부랴 달려가 한국에도 있는 패스트패션 매장을 찾아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샀다. 세일 기간이라 둘을 합쳐 20유로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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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클럽 베르크하인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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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고 밤 11시30분에 지하철역에서 제이를 다시 만났다. 10여분을 걸으니 불빛이 사라지고 컴컴한 공터가 나왔다. 이런 곳에 클럽이 있나? 순간 크고 낡고 네모반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밤 12시 오픈 전인데도 사람들이 수백미터 늘어서 있었다. 적어도 두시간은 기다릴 판이었다. 그런데 줄이 팍팍 줄었다. 입구에서 무참히 거부당한 이들이 끊임없이 되돌아 나왔다. 근사한 차림의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한시간 넘게 기다리니 어느덧 입구가 가까워졌다. 좀 전까지 떠들던 사람들도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인터넷에 나온 지침을 다들 아는 듯했다. 입사시험 면접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앞사람들이 잇따라 거부당했다. 그들은 항의 한번 못 하고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몇명이냐고 묻는 듯해 손가락 둘을 내밀었다. 직전까진 빠르게 판단하던 스벤이 잠시 머뭇거렸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고개 숙이고 얌전히 있어야 하나? 아냐. 이게 뭐라고. 기죽지 말자. 자신만만한 척하며 검은 선글라스를 쓴 스벤의 눈을 봤다. 몇초가 몇분처럼 길게 느껴진 기싸움 끝에 스벤이 오케이 사인을 냈다. 좋아하는 티도 내지 못하고 조용히 문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몸수색을 철저히 하더니 핸드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내부는 촬영금지였다. 사진 찍는 게 발각되는 순간 쫓겨난다고 한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 보호를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제이는 설명했다. 입장료 18유로를 내니 팔에 도장을 찍어줬다. 이 도장이면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집에 갔다가 다음날 다시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제야 제이와 나는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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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클럽 베르크하인에서 공연하는 디제이 벤 클록을 그린 작품. 이링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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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선 폐건물 분위기가 물씬 났다. 영화 <매드맥스>처럼 ‘종말 이후’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 가운데 묵직한 테크노 음악이 쿵쾅거렸다. 이링의 설명을 들어보면 “흔히 말하는 이디엠(EDM)이 미국에서 거대한 빅룸 스테이지 형식으로 대중화된 전자댄스음악이라면, 유럽에서 사랑받는 테크노는 무겁고 진중한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전자음악”이다. “이디엠이 오색찬란한 빛이라면, 테크노는 블랙”이다. 그래선지 ‘테크노의 성지’ 베르크하인의 조명은 어두웠다.
“뭐야 잘 추는 사람도 없잖아
묵직한 테크노 음악에 맞춰
과감히 손발을 휘저어 보았다
온몸 퍼지는 흥…이거로구나!”
클럽 내부는 ‘절대 촬영금지’
‘VIP 특별우대’ 강남 클럽과 달리
여기선 테크노 앞에 ‘만인 평등’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춤을 추는데, 놀라운 점은 춤을 잘 추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다들 이곳에 자기 혼자밖에 없는 듯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춤을 췄다. 속옷만 걸치고 노는 사람은 있어도 다른 사람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은 없었다. “여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오롯이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어서 좋아.” 제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몇번 안 가본 한국 클럽에서 고개만 까딱였던 나도 왠지 용기가 났다. 과감하게 손발을 휘저으며 막춤을 췄다. 다른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 안의 흥과 음악만이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이거로구나!
클럽 곳곳에는 앉아서 쉴 만한 공간들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은 춤을 추다 지치면 앉아서 대화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웠다. 강남 클럽 버닝썬에선 엄청난 돈을 내고 ‘만수르 세트’를 시켜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지만, 여기선 만인이 평등했다. 배고프면 바에 가서 샌드위치, 바나나, 아이스크림 등을 사 먹을 수도 있다. 금토일 사흘 내내 이곳에서 먹고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 클럽에선 춤추다가 쉬고 싶거나 배고프면 밖에 나와야 하잖아. 그런데 여기선 모든 걸 통으로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 제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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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크하인과 시시포스 입장 도장을 나란히 찍은 팔뚝을 시시포스 정문을 배경으로 찍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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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다 쉬다 춤추다 얘기하다…
마치 록페에 온 기분이었다
한국 클럽 문화도 바꿔볼까?
새벽 4시 넘어 베르크하인을 나왔다. 이번에는 오픈에어 클럽으로 이름난 시시포스로 옮겼다. 벌써 동이 터 환해졌는데도 줄이 엄청났다. 두시간을 기다려 허름한 입구를 통과하니 작은 집들과 연못과 백사장이 있는 별천지가 펼쳐졌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니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미친 듯이 춤추고 있었다. 바깥에선 곳곳에 앉아 아침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책 읽는 사람,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이와 나는 맥주와 피자를 사들고 아침을 먹었다. 록페스티벌에 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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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베를린 클럽 시시포스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던 중 점프하는 사진을 찍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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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넘어 시시포스를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길이 한적하고 상쾌했다. 그냥 갈 수 없어 괜히 점프하며 사진을 찍었다. 숙소로 돌아가 자고 일어나면 귀국할 시간이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클럽에 가볼까? 내가 앞장서서 자유와 다양성의 클럽 문화로 바꿔볼까? 근데 그러기 전에 입구에서 잘릴 것 같은데…. 에이, 담에 돈 모아서 또 베르크하인에 오자. 혹시 잘리면 다른 클럽 가면 되지.
베를린/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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