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4 19:00
수정 : 2019.07.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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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에서 노회찬과 가까운 지인이었던 이상엽 사진가가 슬쩍 찍은 취중의 노회찬. 2009년 진보신당 동지였던 조승수 후보가 울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축하 술자리에서 빗자루를 들고서 기타치는 흉내를 내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인의 인간적 풍모가 느껴지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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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전 의원 1주기 맞아
문화예술인 48명 추모미술전
내일부터 전태일기념관에서
이상엽·류장복·박영균 작가들
생전의 면모 되살려내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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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판에서 노회찬과 가까운 지인이었던 이상엽 사진가가 슬쩍 찍은 취중의 노회찬. 2009년 진보신당 동지였던 조승수 후보가 울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축하 술자리에서 빗자루를 들고서 기타치는 흉내를 내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인의 인간적 풍모가 느껴지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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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개막하는 날 그 사람이 올 것 같아요. 웃으면서…”
도예가 한애규씨는 이제 세상에 없는 노회찬 전의원을 두고 담담하게 떠올렸다. 20년 넘게 전시와 공연 등을 보고 밥과 술을 함께 먹고 마시며 인연을 쌓아온 고인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뜨기 열흘 전 서울 서촌에서 만난 노회찬은 서정주 시에 붙여 작곡한 노래라며 ‘소연가’를 처음 불러주었다고 한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거나…’로 시작되는 노래. 고인은 자리가 파한 뒤 홍제동 산골고개에서 헤어질 때 자신이 갖고있던 우산을 작가에게 유품처럼 건넸다. 추억을 털어놓은 한 작가는 말했다. “노회찬의 1주기 전시라니 현실감이 없어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고, 예술인들한테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말 반갑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래요. ”
정치인이자 문화예술 애호가 노회찬을 보낸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오는 1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기념관에서 노회찬 재단 주최로 열리는 1주기 추모미술전 ‘함께 꿈꾸는 세상’을 함께 꾸리는 미술인들은 한애규 작가처럼, 그와의 크고 작은 인연 혹은 출품작에 새겨넣은 노회찬에 대한 나름의 색다른 감상을 털어놓았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노회찬의 인간적 풍모를 보여주는 ‘기타리스트 노회찬’의 사진이 언론 등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탄 이상엽 사진가는 아마도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고인의 예술계 지인일 것이다. 생전 진보정당 동지로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가장 절친했던 문화예술계 인사로서 그와의 20여년 추억을 담은 사진들을 출품한다. 유명한 기타리스트 사진과 첼로를 켜는 고인의 모습, 눈발을 맞으며 투쟁 구호를 외치는 사진들을 내놓은 이 사진가는 기타리스트 사진이 “2006년 진보신당 후보로 울산에 출마한 조승수 후보가 당선된 뒤 축하자리에서 흥겨워 빗자루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혁명가 체게바라나 영국 정치인 처칠처럼 사진가나 문필가로도 작업하고 싶다는 욕망을 종종 비치곤 했다”고 회고했다. “노회찬의 매력은 소탈하고 탈권위적이라는데 있어요. 작품을 보는 직관력도 좋았고요. 문화예술인들 만나면서 그런 매력이 더욱 각별했고 예술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도 놓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러시아 음악과 노래를 각별히 사랑했지만, 전시 보는 것도 즐겼어요. 작품들을 사서 수집도 했는데, 경매에서 팔아서 파업기금 등으로 지원도 했어요. 조직 중심으로 돌아가는 진보정치 풍토에서 문화예술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감성을 반영하려고 많이 고민하고 애썼던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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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사진가는 독특한 구도의 10년전 풍경사진으로 노회찬을 떠올렸다. 2009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회찬이 연설할 당시 고인의 손짓과 뒷모습, 하늘에 떠있던 풍선과 나무 따위를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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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작가의 작품 외에도 모두 48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추모미술전의 출품작들 상당수는 창작하게 된 곡절이나 만듦새 등이 단순한 추념의 의미를 벗어나 있다. 중견화가 류장복씨는 노회찬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2주일 전 먼저 지병으로 세상을 떴던 동료 화가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겹쳐 생각하면서 두꺼운 유화물감을 발라 화폭에 꼭꼭 이겨넣은 꽃의 이미지를 그렸다. ‘7월23일 밤 26시 54분 풍운아 노회찬, 그에게 드림’이라는 비장한 제목의 헌화가 같은 작품이 완성됐다. 박영균 작가는 2010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노동자 대회 포토뉴스가 나온 작업실 모니터를 그린 구작을 살펴보다가 흐릿한 모습의 노회찬 의원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의 모습을 다시 손질해 출품작으로 내놓았다. 방정아 작가는 신작 ‘노회찬이 만들어가는 숲’에서 도시의 지하 어느 공간 속에 서있는 노회찬의 실루엣을 그렸다. 사람들이 바삐들 지나가는 사이에서 땅에서 겨우 자라나 싹 틔우는 나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그의 흐릿한 상을 통해 나무들이 숲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했다. 일반 대중과 눈높이로 소통하기 위해 아래로 눈을 내려보는, 열정 가득한 노회찬의 생전 모습을 화면 가득 담고 붉은 색으로 칠한 송인 작가의 ‘붉은 노회찬’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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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 작가가 1주기를 맞아 그린 노회찬 초상그림 <붉은 노회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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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원래 예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재단 쪽은 공연과 기념 행사만 기획하고 시각예술 작품은 일부 작가들의 기증만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고인의 판화를 출품한 참가자이자, 전시를 공동기획한 이동환 작가는 “애초 재단 쪽이 기증에 도움을 달라고 청해 다른 동료 지인들을 만나보니 기증에 대한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웠다. 전시도 함께 해야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서 고인의 처조카였던 이채영 백남준미술관 큐레이터와 의기투합해 추모전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를 준비하면서 노회찬이 정치가이기 이전에 인간이자, 예인으로서 열정과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돼 더욱 기뻤습니다.”
10년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대중연설회장에서 그의 풍모를 인상깊게 지켜봤다는 노순택 작가도 추모전에 출품하면서 그런 감흥을 느꼈던 모양이다. 작가는 10년전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회찬의 손짓과 뒤태, 그리고 그때 하늘을 떠다니는 풍선들을 찍은 출품작 석점을 내면서 이렇게 설명을 적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여름, 노회찬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뜨겁게 연설했다. 선언과 풍선과 몸짓이 함께였다. 물론 웃음도 함께 였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노회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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