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7 11:50
수정 : 2019.09.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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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1888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보낸 친필 추정 편지.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군사교관한테 보낸 것으로 한문과 영어로 각각 내용을 따로 적었다. 정병을 육성해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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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재단 주미공사 박정양의 친필 추정 편지 발굴
구한말 미국공관 편지 실물 처음 확인
조선에 간 미국인 군사교관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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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이 1888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보낸 친필 추정 편지.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군사교관한테 보낸 것으로 한문과 영어로 각각 내용을 따로 적었다. 정병을 육성해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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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 군인들을 정예병사로 키워주시오.”
구한말 조선 정부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5)이 미국 워싱턴에서 서울의 미국 군사교관한테 보낸 131년 전 편지가 나왔다. 당시 미국 공관에서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쓴 편지 실물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입수한 박정양의 친필로 추정되는 편지지와 봉투 등의 관련 자료들을 17일 언론에 내보였다. 1888년 6월 12일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육군교사(군사교관) 존 지(G). 리에게 보낸 서한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역사박물관의 민병용 관장한테서 지난 7월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편지지는 가로 24.8㎝·세로 20.0㎝의 크기다. 윗 부분에 공사관 전용지를 뜻하는 영어 문구 ‘리게이션 오브 코리아, 워싱턴’(LEGATION OF KOREA, WASHINGTON)이 찍혔다. 오른쪽에는 한문, 왼쪽에는 영어로 각각 나란히 내용을 적어놓은 것이 특이하다. 한문글씨는 박정양의 서체로 추정된다.
한자로 적은 편지글 내용을 보면, 박정양은 수신인인 리가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운을 떼면서 “연무공원(鍊武公院:1888년~1894년 조선 정부가 운영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장교사관 양성학교)은 이미 개설됐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군대 위용이 이제부터 더욱 빛날 터이니 대인이 뜻과 마음을 다해 가르쳐 정예병으로 키워 달라”는 당부를 적고있다. 편지글 말미엔 ‘무자년(戊子年) 5월 2일(음력) 박정양’이라고 쓰고 수결(手決:사인)을 덧붙였다. 영어글에는 안부 인사와 더불어 잘 지내기 바란다는 간략한 내용만 적었다. 편지봉투의 경우 앞면에 명기된 미국 공사관 영어 문구 옆에 수신인과 발신인을 한자로 썼고, 뒷면에는 영어로 수신인과 도착지를 적었다.
수신인 리는 1888년 4월 미군을 퇴역한 뒤 조선에 입국해 연무공원의 군사교관으로 조선군인들을 훈련시키며 장교를 길러내는 일을 했다. 그와 박정양의 관계는 박정양이 미국 주재 시절 남긴 기록인 <미행일기>(美行日記)에도 나와있다. 1888년 1월 27일 육군교사 파견을 앞둔 리 일행이 주미공사관을 방문해 박정양 공사와 인사를 나누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은 “본국에 편지를 보냈다고 박정양이 <미행일기>에 기록한 일자와 편지 발신일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했다. “<미행일기>를 보면, 박정양은 존 리 일행이 파견 전 공사관을 들렀을 때 정병을 잘 키워달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나와요. 그들이 조선에 도착한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외교 활동 맥락에서 공식 편지를 써서 재차 같은 당부를 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조선 정부와 외교관들이 당시 군대의 근대화에 간곡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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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 편지의 봉투 앞면. 대조선 경성에 유(留)하는 미육군 교사 리니(利尼) 대인이 수신인으로 명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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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양 편지는 원래 2005년 재미동포 맹성렬씨가 온라인 경매에서 사들인 뒤 지난 5월 한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던 유물이었다고 한다. 재단 쪽은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이 박물관 유물을 조사하던 중 편지를 확인했으며, 민 관장이 기증 의사를 밝혀 인수하게됐다고 밝혔다. 민 관장은 워싱턴 옛 공사관 건물을 매입하고 복원한 문화재청이 자료를 활용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 기증을 결심했다는게 재단 쪽의 전언이다.
편지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된 상태로 현재 복사본을 만드는 중이다. 재단 쪽은 워싱턴에 복원된 옛 대한제국공사관에서 조만간 복사본을 전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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