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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1 17:06 수정 : 2019.10.13 19:05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엠넷 제공
참 많기도 하다. 하도 많아서 제목도 다 못 적겠다. 필자가 일하는 <에스비에스>(SBS)에서 만든 <케이팝 스타>는 그동안 명멸했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슈퍼스타케이>(엠넷)와 함께 시조새 격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케이팝 스타> 역시 점점 쇠퇴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초창기의 열풍은 대단했다.

참가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해당 프로그램의 스태프만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예선전은 다른 부서, 다른 팀의 피디들도 차출되어 심사를 봤고 나도 몇년 동안 예선 심사를 봤다. 주로 대형 경기장에 수십개의 부스를 만들어놓고, 부스별로 나 같은 심사위원들이 앉아서 참가자들의 춤과 노래를 심사했다. 좁은 텐트 안에서 하루 종일 100명 넘는 아이들의 오디션을 심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매우 피곤한 일정이었는데도 아이들의 귀여움에 폭소할 때도 많았다. 특이한 분장이나 의상도 웃겼지만, 실기 테스트에 앞서 간단히 훑어보는 설문조사의 답안이 아주 참신했다. 이를테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급체’라는 답을 쓴 친구가 있었다. 하긴 15살 인생이니 그럴 수도 있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회전초밥을 먹었던 날’이라는 답을 쓴 친구에게는 초밥을 사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오디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종종 브라질을 떠올리곤 했다. 브라질 아이들 사이에 축구는 광풍에 가깝게 인기가 많다. 이른바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가 축구 외에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를 유독 좋아하는 시기임을 고려해도, 당시 오디션 열풍은 이런 식의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브라질 애들이 축구에 목숨 거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연예인이 되기 위해 몰려든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 돌이켜보면 맞는 것 같다. 그 영역이 방송국에서 유튜브로 바뀌었을 뿐.

<케이팝 스타> 이후로도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또 사라졌다. 그중에서 <프로듀서 101>(엠넷)은 꽤 진화한 형태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가 이른바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연습생들을 발탁하고 길러내는 방식. ‘피디 선생님’들이 아닌 시청자가 직접 의사결정을 한다니, 이것은 진정 새 시대에 어울리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얼마 전 이 프로그램에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 방송사 차원을 넘어 수사기관으로 사건이 넘어갔다. 그뿐이 아니다. 제작진이 사전에 염두에 둔 연습생이 실제 방송되는 프로그램 안에서 유리한 분량을 할당받는, 소위 ‘피디픽’ 의혹도 제기되었다. <프로듀스 101>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학교> 역시 참가했던 연습생의 비리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마약 소굴을 넘어 범죄 집단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와이지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제이티비시>(JTBC)에서 방송한 오디션 프로그램 <믹스나인>은 말할 것도 없다.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꼼수와 만행의 종합선물세트. 우웩. 글을 쓰면서도 토할 것 같은데, 피해를 본 아이들은 어땠을까? 또 방송사를 믿고 프로그램을 성원해준 시청자들이 감내해야 할 회의감과 배신감은? 어린 시청자들의 가치관이 왜곡되는 일은 누가 책임지나?

엠넷 제공
요즘 아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더 공정함에 민감하다는 분석이 있다. 아재들은 종종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혼동하는데 두 개념은 엄연히 다르다. 이를테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약속되어 있지 않은 입시 특혜를 주는 건 정의로울 수는 있으나 공정하지는 않다. 공정함은 서로 합의한 규칙에 연동된다. 때로는 명문화된, 때로는 암묵적인 규칙이 얼마나 정의로운지는 두번째 문제다. 90명의 소녀가 나가떨어지고 멤버 11명의 걸그룹을 만들어 낸 <프로듀스 101>의 규칙은 내가 보기에 너무 잔인했고 정의롭지도 않았지만 젊은 세대는 받아들였다. 참여자들이 미리 합의를 했고 그 합의가 지켜졌다면 공정한 것이니까.

요즘 아이들은 왜 20~30년 전 아이들에 비해 공정함에 대해 예민할까? 고민 끝에 두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첫번째로 사회 전반의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이 두자리를 넘나들고, 불공정함 속에서도 두번째, 세번째 기회가 있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수축경제의 시대다. 이 시대의 기회는 기적처럼 절실한 재화가 되어버렸다. 두번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 게임에 익숙해진 사고방식이다. 엉뚱한 가설인데 한번 들어보시길. 브롤, 오버워치, 엘오엘, 리니지, 달빛조각사 등 모든 게임은 철저히 룰에 의해 작동된다. 게임 안에서도 이른바 현질(돈을 주고 무기 등의 아이템을 구입하는) 행위를 통한 자본서열의 불평등은 존재하고 그다지 정의롭지 않지만, 그 불평등 자체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합의된 룰이기에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현실 생활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게임의 룰 자체를 속이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이건 게임을 시작할 때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절망보다 더 큰 절망이다. 입시에서도 특권층이 특별한 룰을 이용해 좋은 대학을 가고, 취직할 때도 특별한 엄마, 아빠를 둔 아이들이 특별한 직장을 차지하는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연예인이 되는 과정마저 사기라고 한다면…,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이 단체로 조커 가면을 쓰고 시위를 일으켜도 어른들은 할 말이 없다. 내 얼굴에 침 뱉기란 걸 아는데 어쩔 수 없다. 이러니 욕을 먹지. 이 빌어먹을 방송국 놈들아.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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