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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0 19:19 수정 : 2005.02.10 19:19

벽을 허물라…학제를 바꾸라…
제대로 평가하라

위기의 인문학-인문사회연구회 해법 제시

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최송화)가 <인문정책연구총서 2004>를 발간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모두 5권에 나눠 실었다. 인문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지난한 노력이 여기에 녹아있다. 박성수(한국해양대)·유초하(충북대)·이영석(경상대)·김동노(연세대)·전영평(대구대) 교수 등 연구진 23명이 이번 연구에 참가했다.

이들이 보기에 “인문학의 위기는 20세기 말 이래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총체적 위기의 압축된 표현”이다. “그 주원인은 세계적인 무한경쟁과 상업주의적 교육정책”에 있지만, “변화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인문학 주체들의 책임”도 크다.

제도적 대안 제시가 이번 연구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구상과 모색 차원의 ‘모델’이 대부분이지만,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와 정책담당자들이 진지하게 음미할 대목이 적지 않다.

19세기 쪼개진 자연·인문·사회과학
서로 넘나드는 지식적 통합 이뤄져야

벽을 허물어라= 연구진들은 자연과학·인문과학·사회과학으로 구분짓는 이른바 ‘과학의 3분리 모델’의 극복을 주장한다. 19세기에 굳어진 3분 모델은 21세기 인문학 위기의 핵심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과학이 서로의 자양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정보들만 바다를 이뤄 흘러갈 뿐 지식으로 재가공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구체적 현실분석에서 출발하지 않은 탓에 사회적 복잡성의 증대에 대처능력을 상실”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연구진들은 ‘횡단적 이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문·자연·사회과학은 물론 때로 정책과 기술적 합리성의 영역까지 넘나들자는 것이다. 이는 꿈이 아니다. 제도적 수준의 지식통합은 국가 차원(정조의 규장각), 학계 차원(독일의 바우하우스), 대학 차원(영국 버밍엄대의 현대문화연구소) 등에서 동시에 이뤄져 왔다.

인문사회연구회가 제안하는 것은 ‘학술시스템 연구센터’다. 국가와 대학, 기업, 사회, 연구소 등을 서로 네트워킹하는 동시에, 이를 중심으로 인문·자연과학 분야를 동시에 지원하는 학술진흥재단 등 기존의 국가학술기구를 재편하는 것이 이 센터의 역할이다.

문학·철학·사학 틀박힌 인문교육 말고
사회현실에 맞게 ‘지역문화학’ 재배열

대학을 바꿔라= 인문학 위기 극복의 중추는 역시 대학이다. 연구진들은 학제 변화를 말한다. 문학·철학·사학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 인문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기획이다. 그 변화의 방향은 ‘지역문화학’이다. 세계를 문화권별로 나누고, 이 지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적 목적 아래 인문학을 재배열하자는 것이다. 지역문화학은 “국내 인문학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기존 인문학 체제에 비해 사회현실의 필요에 훨씬 근접한 학문의 장”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인문학도 고유의 영역을 더 넓힐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교수분업화 체제는 또다른 대안이다. 연구에 전념할 교수인력을 특화시키고 일부 교수만 연구에 전념하고 그밖의 교수는 학생들을 상대로 인문학적 토양을 넓힐 일반 강의에 보다 많은 시간을 쏟도록 해서, 대학과 대학원의 연계고리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교수에게 연구업적의 양적 부담을 과중하게 주는 것은 우수한 연구결과물을 만들기 보다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양산”할 뿐이다. 전국적으로 230여개에 이르는 대학 부설 인문학 관련 연구소에 강의로부터 자유로운 ‘연구전임교수제’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포화상태 양적 연구 평가
학술지보다 대중적 소통에 주안을

제대로 평가하라= 국가와 대학을 정비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은 인문학 주체들의 역량 강화다. 연구진들은 그 핵심이 학술진흥재단과 각 대학이 실시하고 있는 ‘인문학 분야 평가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연구업적 평가 및 교수승진 심사가 ‘양적 지표’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인문학 주체들의 역량 발전에 주요한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양적 지표 중심의 평가로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연구결과 양산을 유도하면서, 질적 수준의 저하가 필연적으로 수반”됐기 때문이다.

연구진들은 “객관성 최대화의 선입견을 버리고 최소한의 객관성과 최대한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평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명 학술지 등재 실적에만 매달리게 되는 연구논문보다는 대중적 소통이 가능한 학술저서 출간에 더 큰 가치를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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