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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5 05:00 수정 : 2019.11.05 15:08

【다시 TV로 돌아온 책방송 프로그램】
‘심야 편성’에 따분했던 기존 포맷
새로운 트렌드에 재미까지 더해
tvN, 살롱 북클럽+설민석 강의 섞고
JTBC에선 장동건 국내외 서점 탐방

프로그램 제작비 등 정부 지원에
예능·다큐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공중파는 의무 편성해야” 의견도

‘따분하지만 필요하다니까 만드는 방송.’ 주로 심야에 편성돼 낮은 시청률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전통적인 책방송에 대한 일부의 평가였다. 2013년 <즐거운 책 읽기>(한국방송1·KBS1)를 마지막으로 공중파 방송에선 책방송이 자취를 감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달까. 특히 2018년 8월 <문화방송>(MBC)이 파일럿으로 서평 대결 프로그램 <비블리오 배틀>을 방영했다가 한회 만에 접으면서 ‘앞으로 책방송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하지만 이런 걱정도 잠시. 다양한 포맷과 트렌드로 무장하고 책방송이 돌아왔다. 최근 한달여 사이 새롭게 시작한 책 관련 방송이 <교육방송>(EBS)과 종합편성채널·케이블채널·라디오까지 6개에 이른다. 특히 이전처럼 단순히 저자를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 아니라, 북클럽과 동네 책방, 국외 책방 순례 등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의미와 재미 둘 다 잡으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티브이엔 제공
지난 9월 말 방송을 시작한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티브이엔·tvN)는 요즘 뜨는 ‘살롱 북클럽’에 ‘5분 정리 강의’를 합친 듯한 콘셉트다. 인기 역사 강사 설민석이 책 내용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요약해주면, 방송인 전현무, 가수 이적, 배우 문가영이 트레바리(유료 독서 모임)처럼 즐겁게 수다를 푼다. 요약에만 그치지 않고, 물리학자 김상욱, 진화학자 장대익 같은 전문가들이 나와 책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논의를 확장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점이 백미다.

이 방송은 ‘어려운 책으로 방송하면 시청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탈피하고자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그동안 선정된 책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단테의 <신곡>,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같은 ‘다들 샀지만 읽지는 않은’ 단단한 고전들이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교수 등 20여명의 비공개 추천위원단을 통해 책을 골랐다. 이미 도서 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감지된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예고편만으로도 판매량이 증가해, 출판사에선 급히 9천부를 새로 찍었다. 책을 요약해주면 정작 책을 안 읽을 가능성도 있지만,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는 근거다.

정민식 <티브이엔>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제는 정답이 아니라 견해의 시대다. 자기계발만으로 더는 지금의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걸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얕고 넓게 지식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깊이 파야 할 때가 됐다. 내 견해를 깊게 하기에 책만큼 좋은 매체는 없다”고 말했다.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제이티비시 제공
지난달 29일 1부 중국 셴펑서점 편이 방송된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제이티비시·JTBC)는 중국·프랑스·일본·한국의 수십년에서 100여년 된 서점들을 다니며 각국의 책 문화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의 모델로 나서 자신이 꾸민 추천 도서 서가를 선보이며 독서가로 유명해진 배우 장동건이 진행을 맡았다. 제작진은 “한국도 국가적으로 ‘문화 강국’의 기초가 되는 책과 서점, 출판사에 과감한 지원 정책을 해줬으면 좋겠다. 중국 정부는 ‘경제는 성공했으니 이제는 문화를 부흥하겠다’는 생각으로 2017년부터 ‘전 국민 열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경제적 지원 덕분에 국민들 사이에서 책 문화가 부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말 시작해 6회까지 방송된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교육방송)은 책방 탐방, 여행, 작가와의 대화를 한데 묶었다. 진행자인 소설가 백영옥이 초대손님 소설가 김훈과 함께 강원도 속초를 찾아 칠성조선소를 둘러보고 동아서점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하는 식이다. 김현주 <교육방송> 책임피디(시피)는 “전국적으로 작지만 독특한 콘셉트로 화제가 된 동네 서점이 늘고 있다. 이런 곳들을 작가들이 찾아가는 ‘길 위의 인문학’ 방송을 한다면 책 읽는 문화 조성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말 방영된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 첫 회에선 진행자인 소설가 백영옥이 초대손님 김훈 소설가와 함께 강원도 속초를 찾아 칠성조선소를 둘러보고 동아서점에서 북콘서트를 진행했다. 교육방송 제공
정부도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책의 해’였던 지난해의 후속 사업으로 올해 다시 예산을 확보해 책 프로그램에 제작비를 지원했다. 가수 설현, 배우 이엘 등 유명인이 라디오에 나와 책을 낭독하는 <책을 듣다>(문화방송 표준 에프엠), 아이돌 가수들이 책을 읽은 뒤 어울리는 배경음악(오에스티·OST)을 작곡하고 부르는 <멜로디 책방>(제이티비시), 최근 독서 경향과 국외 독서정책의 변화를 알아본 다큐멘터리 <미래를 바꾸는 책의 노크>(제이티비시 다큐멘터리 플러스) 등 10월에 방영된 방송 세편을 대상으로 했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유튜브 등 방송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방송사들의 시청률 강박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자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열렸고, 책방송도 예능적 성격만 가미하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독서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활동이다. 2000년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문화방송)처럼 ‘남들이 읽으니 나도 따라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집단적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공중파 방송도 다시 책방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한국방송, 에스비에스(SBS), 문화방송처럼 공공재인 공중파를 사용하는 방송사들은 책 문화 증진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책 관련 방송을 편성하도록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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