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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6 14:40 수정 : 2019.11.27 17:45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이영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나를 찾아줘’로 14년 만에 스크린 복귀

광고 속 맑고 투명한 ‘신비주의’ 이미지
“10~20대 숫기 없는 성격 탓에 굳어져”

‘봄날은 간다’ 당찬 작업 “라면 먹을래요?”
‘친절한 금자씨’ 센 언니 “너나 잘하세요”
연기 변곡점 만들더니…돌연 결혼 선언

6년 전 아이 잃어버린 엄마 역으로 복귀
피폐해진 마음과 공허한 마음 눈빛에 담아
“신인 감독의 시나리오 탄탄한 내공에 선택”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이영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영애는 ‘산소 같은 여자’였다. 광고 속 그는 너무 맑고 투명해 손만 닿아도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았다. 드라마 속에선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 세계의 이영애는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신비주의’라는 말이 늘 그를 따라 다닌 이유다.

“저는 그런 이미지를 의도한 적이 없어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이었죠. 10~20대 시절,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하고 밖에서는 잘 나서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저에게는 산소 같은 여자, 신비주의 이미지만 남았더라고요.”

25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마주한 현실의 이영애가 말했다. ‘산소 같은 여자’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되, 그의 두 다리는 분명 땅을 딛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이미지 변신은 진작 이뤄졌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그는 호감 가는 남자에게 “라면 먹을래요?” 하고 집으로 불러들이는 당찬 여성을 연기했다. 드라마 <대장금>(2003~2004)에서는 조선 시대에 드문 주체적 여성상을 선보이며 한류스타로 우뚝 섰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는 변신의 정점이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차갑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내뱉은 금자씨는 죽은 아이들을 위해 복수의 화신이 된다.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이영애.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연기자로서 만개하던 시기에 이영애는 돌연 사라졌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2009년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2011년 아들·딸 이란성 쌍둥이를 낳으면서 복귀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모습을 보인 건 2017년이었다.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와 이경미 감독의 단편영화 <아랫집>으로 연기에 재시동을 걸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장편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27일 개봉)로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가슴 한편에 있었지만, 늦게 결혼하고 쌍둥이까지 낳으니 집안일 하고 아이 키우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었어요. 종종 대본이 들어와도 엄마 역할 하느라 엄두도 못 냈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다시 연기 생각이 간절해졌을 즈음 <나를 찾아줘>를 만났어요. 신인 감독이지만 10년 넘게 고뇌하며 시나리오를 고친 흔적과 탄탄한 내공이 보였어요. 주저 없이 선택한 이유죠.”

영화에서 이영애가 연기한 정연은 6년 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다. 피폐하고 공허한 마음을 안고 살면서도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느 날 실종 전단지 속 아들과 똑같은 인상착의의 아이를 봤다는 의문의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정연은 혼자 어느 섬 바닷가 낚시터로 아들을 찾아 나서지만, 아이의 흔적은 없고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기만 하다.

이영애의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나를 찾아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영애는 후반부에서 격렬한 액션 연기도 선보인다. 이를 위해 액션스쿨에도 다녔다. 하지만 액션 연기 못지않게 힘들었던 건 아이를 잃어버린 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피폐해진 마음은 허공에 떠 있지만, 아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에 발을 내딛고 살아야 해요. 현실인이지만 현실인이 아닌 이중적인 상태를 중간중간 보이는 눈빛과 뒷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했는데, 그런 감정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감정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연기도 했다. 낚시터에서 쫓기듯 나와 갯벌 옆에 차를 세우고 목 놓아 통곡하는 장면을 7~8분 가까운 롱테이크로 찍었다. “감정 표현이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관객에게 너무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아 최종본에선 뺐어요.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잘했다 싶어요.” 그 장면은 빠졌지만 감정의 여운은 영화에 남아 있다. 차 안에서 머리를 올려 묶으며 낚시터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정연의 얼굴은 무표정하면서도 강한 결기가 서려 있다. 이영애 연기의 백미다.

그는 가정을 갖고 나이 들면서 연기가 더 편해졌다고 했다. “이제는 특정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고 폭넓은 색깔의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 ‘나에게서도 저런 눈빛과 분위기가 나오는구나’ 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했어요. <나를 찾아줘>는 40대 이후 나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그를 더 자주 볼 수 있을까? 그는 “이 영화가 잘돼 더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찾아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영화의 흥행을 점칠 순 없어도 이것 하나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를 찾아줘>는 이영애 연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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