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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아래사람들
문화관광부의 ‘2003년 문화 향수 실태 조사’ 결과를 다시 들춰본다. 2002년 7월부터 한 해 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본 국민은 10명당 1명(11.1%)에 지나지 않는다. 무용을 본 이는 더 귀하다. 그 해, 무용을 봤다면 당신은 우리 나라 국민 1%다. 두 명 가운데 한 명 이상(53.3%)이 영화를 본 것과 엄청난 차이다.올해는 좀 오르려나? 3년 주기 조사라 두고봐야겠지만 그럴 것 같다. 뮤지컬 관계자들은 시장이 어림 500억원(2003년)에서 800억원(2005년)으로 커졌다고들 본다. 하지만 뮤지컬이라고 해 저 혼자 크진 않는다. 성장 동력의 한 축은 든든하게 포진한 무대 공연의 마니아들이다.
주부 박신정(40)씨. 두 아들의 어머니, 무대 공연 마니아들의 대모 가운데 한 명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관람동호회인 ‘누드카페’를 운영한다. 단체로 공연 티켓을 구해 작품을 감상하고, 느낌을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다. 더 크게 뭉치려는 건 물론 조금이라도 더 단체 할인을 받기 위해서다. 거품 가격을 껍질 벗기듯 벗겨 ‘알맹이’에만 대가를 치르겠다는 ‘서민적 셈법’이 ‘누드’란 이름에 들어있다.
1만4천명 회원 둔 동호회 카페 운영
대학로에 안방 드라들듯 출근도장
“무조건 깎는 게 사실 좋은 건 아니죠. 하지만 뮤지컬 시장의 경우, 갑자기 커지면서 엄연히 거품도 있거든요. 작품의 질보다 유명세를 탄 배우들의 몸값이 커졌기 때문일 거예요. 요즘 무대 공연의 흥행도 영화처럼 유명한 배우들을 얼마나 확보했는지에 달려 있어요. 안타깝죠. 저희는 어디까지나 제작, 기획사에서 할인해주겠다는 범위 내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수혜자일 뿐입니다.” 요즘엔 평균 20~30% 할인혜택을 얻는다. 곳곳에서 남발하는 초대권을 취급하진 않는다.
누드카페의 회원만 1만4천여명이다. 이 속에는 뮤지컬 <헤드윅>만 25번을 넘게 본 회원도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될 때 버스 한 대를 통째 빌려 떼로 올라온 부산 회원들도 있다. 박씨 말마따나 “작품 두 시간을 보면 네 시간을 이야기할 전문가들”이 수도 없이 많다.
박씨부터 거의 하루에 한 편씩 무대 공연을 봐왔던 ‘광’이다. 지금은 좀 바빠졌다. 주말에만 하루 두 작품씩 소화한다.
“공연이 좋아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젠 어마어마한 회원들 관리하고 수많은 공연물의 단체구매를 주선하고…. 바쁘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게 주책같기도 해요. 젊은이들과 대화하려고 통신 은어도 배우고, 이모티콘 사용하는 요령도 배워요.” 공연이든 사람이든 ‘새로움’을 접하는 일은 그저 즐겁다는 듯, 웃는다.
“요즘 많은 작품들이 흥행에만 맞춰져 있어요. 작품보다 배우들 좇아서 공연 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이런 이유 등으로 연극이 외면되는 현실이 아쉽다고 한다.
“2003년엔 연극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10명 중 8명이 뮤지컬을 찾아요. 그래서 일부러 더 훌륭한 연극이나 재미있는 작품은 놓치면 안 된다고 제가 적극 추천을 하기도 해요. 그럼 하루 이틀 지나면서 댓글이 달려요. 작품 좋았다거나 자리가 ‘짱’이었다며 인사 전화가 오죠. 해외 출장가면서도 전화를 줘요.”
달력을 보여준다. 스케줄이 꽉 찼다. 이번 주 연극 <테이프>, 뮤지컬 <밑바닥에서> <어새신> 등의 단체관람이 예정되어있다. 거의 매일 대학로로 나간다. 작품이 재미없으면 반쯤 잔다. 부담없다. 중학교 때 처음 연극반 활동을 했던 풍경이 몽개몽개 꿈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이젠 대학로가 거의 제 안방처럼 느껴진다니까요.”
사진 김태형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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