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무대 X파일] 현대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나는 발레의 적입니다. 발레가 거짓이고, 부조리하며, 예술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 나는 내가 발레 댄서로서 경력을 쌓지 않아도 좋게 해준 잔인한 운명에 대해 신에게 감사 드립니다.”20세기 초 당대를 주름잡던 프리마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집에 찾아온 이사도라 덩컨은 발레 뤼스의 창시자 디아길레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침 이 시기 그녀는 무용학교를 운영, 기존의 고전발레를 파괴하는 새로운 몸동작을 만들어내며 고전발레의 아성이었던 러시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덩컨의 춤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파블로바의 단짝 안무가였던 미하일 포킨은 덩컨의 춤을 열성적으로 찬양한 반면, 디아길레프의 추종자 니진스키는 조롱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도 자신의 발레음악으로 덩컨이 춤을 출까봐 염려했다고 한다.
여하튼 덩컨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고전발레에 최초로 반기를 든 선구자. 현대무용의 창시자. 즉흥 무용의 대가. 튀튀(여성 발레복)와 토슈즈가 여성의 몸을 왜곡한다 하여 맨발에 나체로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사실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우선 덩컨 이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전발레의 테크닉을 깨뜨리려는 현대무용의 시도가 이뤄져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덩컨 이후의 세대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오히려 덩컨은 고대 그리스 무용으로의 회귀를 시도했다. 덩컨이 고전발레를 전혀 접하지 않아서 춤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 또한 틀리다. 영국 로열발레단 안무가에게 고전 발레의 테크닉을 매우 체계적으로 섭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덩컨은 단 한 번도 나체로 춤을 춘 적이 없다. 고대 그리스의 사상으로 회귀하고자 갈망했던 덩컨은 토가나 튜닉 같은 고대 그리스 의상을 즐겨입었다. 그 옷이 풍성하고 헐거운 탓에 역동적으로 춤을 출 때면 흘러내려 덩컨의 신체 일부가 노출됐으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직접 의상을 찢기도 했다. 이처럼 신체의 노출을 꺼리지 않는 도발적인 퍼포먼스와 사생아를 줄줄이 낳아 기를 만큼 결혼이란 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성향 탓에 덩컨은 여성해방운동가로서 당대 신여성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색깔이 짙을수록 본질은 빛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 동시대 내로라하는 안무의 거장들과 달리 덩컨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기존의 틀을 갈아엎는 데는 성공했지만, ‘덩컨 스타일’이라는 자신만의 꽃을 피우지 못했기에 덩컨의 순수 예술적 업적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뒷자취를 잘 알고 있는 혹자는 덩컨을 예술가가 아닌 단순히 자유를 갈망하는 시대에 편승한 여성해방운동가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념과 감성이 앞서 나가 본연의 의무인 창조를 완성하지 못한 불운한 예술가의 뒷모습이다. 공연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노승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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