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무대X파일-혹평받은 리스트와 바그너
19세기 유럽은 정부나 국가의 무조건적인 검열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는 분위기였다. 그리하여 다양한 예술품들이 창조되었는데 그 작품들을 평가하는 비평활동이 가장 활발해졌던 때도 바로 이 시대였다.그러나 이제 막 자유를 만끽한 이들의 시각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1869년 뉴욕 셔머 출판사에서는 작자 미상의 카툰을 인쇄 배포했다. 카툰의 제목은 ‘미래 음악’인데 고양이 여덟 마리, 당나귀 세 마리와 염소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그리고 있다. 지휘자의 보면대에는 리스트의 교향시 악보가 펼쳐져 있으며, 지휘자 발아래 버려진 악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바그너, 1995년까지 연주금지.”
‘미래 음악’은 당시 상당히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청중들의 귀를 괴롭히니 이 시대에는 연주를 하지 말아주십사, 하는 바람이 담겼다. 그럼에도 이 용어를 거의 매일같이 듣고 산 음악가가 있었으니, 바로 바그너와 리스트다. 좀더 구체적으로 당시 비평을 들여다 보자면, 리스트는 “최고로 조잡한 음악을 쓰는 사람”이며 그의 협주곡은 “외설적이고 부도덕”하다고 지탄받았다. 관현악곡은 “예술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파우스트>는 특히 지탄이 심했다. “만일 그게 음악이라면 타락 음악”이라는 쓴소리까지 감수해야 했다.
리스트의 사위인 바그너에 향해진 비판은 더 심했다. 베를린의 한 정신과 의사는 그를 “정신착란증 환자”라며 경멸했다. “적()그리스도” “선율의 원수”라는 비난도 그를 따라다녔다. 같은 작곡자 베를리오즈조차 바그너를 가리켜 “확실하게 미친 사람”이라며 인격모독성 발언을 퍼부었다. 그의 오페라 <탄호이저> 서곡에 대해 파리의 평론가들은 “우리집 고양이가 피아노 건반 위에 걸어다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내일이라도 얼마든지 작곡할 수 있다”고 말해 훗날 쇼팽의 <고양이 왈츠>의 창작배경을 예언(?)하기도 했다. 1856년 발라키레프는 평론가 스타노프에게 전날 초연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편지로 적어보냈다.
“<로엔그린>을 보고 나서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 아팠다네. 그날 나는 밤새도록 거위꿈을 꾸었어.”
당대 이처럼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이 두 작곡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19세기 ‘미래 음악’이란 표현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마치 작품에 대한 평가를 후세들의 몫으로 남긴 것처럼 여겨진다. 당대에는 최악의 음악이었으나 미래에는 언제든지 그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당시 사람들은 열어둔 셈이다. 과거에서처럼 자유롭고 거침없이 만연했던 혹평들이 현대에 와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오히려 우린 의구심을 품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19세기보다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져서일까. 혹 우리는 19세기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진보하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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