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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0 19:04 수정 : 2005.08.10 19:09

홍대앞 인디판과 부침을 같이 해온 밴드 노브레인 멤버들. 왼쪽부터 정재환(베이스), 이성우(보컬), 정민준(기타), 황현성(드럼).

대중과 호흡이 먼저 방송출연도 기꺼이


 “지금 ‘인디’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 쓰이고 있어요. 누구는 음악 장르의 하나쯤으로 알고 있고, 누구는 유명하지 않으면 다 인디라고 부르죠. 사실 인디건 아니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닌데…. 음악 자체가 중요하지. 우린 인디밴드보다는 펑크밴드로 불려졌으면 해요.”

홍대앞 인디판을 대표해온 밴드 가운데 하나인 노브레인은 이젠 좀 여유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인디’라는 딱지는 이들에게 훈장이기도 했지만 때론 족쇄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홍대앞 인디판의 부침과 닮았다.

밴드결성 9년 단맛 쓴맛 다 봤다
카우치 ‘알몸’ 파문뒤 “똑같은 얘들 아냐?”
사람들이 쑥덕대는데 노력하면 인식 달라지겠죠

1996년 10월 마냥 음악이 하고 싶어 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라이브클럽 드럭에서 열정을 폭발시켰다. 이들의 곡 ‘바다 사나이’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와 함께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유명세는 곧 홍대앞을 넘어 전국구로 퍼졌다. 물론 언론의 ‘띄워주기’ 덕도 컸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듯한 기성 대중문화에 식상해진 대중은 날것 그대로인 듯한 이들의 신선함과 자유분방함에 매료되
기 시작했고, 언론은 인디판에 대한 관심을 경쟁적으로 높여갔다.

“당시 홍대앞은 활기로 넘쳐났어요. 라이브클럽과 밴드,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 모두 지금보다 수는 적었지만 용광로 같은 뜨거움이 있었죠. 언론과 대중의 열광 속에 자신감이 생겼지만, 왠지 허공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 스스로 ‘악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들 우릴 ‘천사’로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던 거죠.”

노브레인은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저 재미있어서 음악을 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들에게 기성 시스템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방송 출연은 물론 광고 제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음악 말고 다른 부분은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한 이들은 거절했다. “돌이켜보면 그땐 너무 경직됐던 것 같기도 해요. 우리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죠. 하하하~!”

2000년 드디어 1집 앨범 <청년폭도맹진가>를 냈고,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이 즈음부터 인디음악에 대한 열풍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언론과 대중은 무섭도록 냉담해졌고, 홍대앞 밴드들 사이엔 허탈감이 팽배했다. “뜨겁게 달궈진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기엔 내실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밴드들 사이에 많았어요.” 노브레인 또한 2집(2001)과 3집(2003)에서 쓰라린 아픔을 맛봐야 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직접 인디레이블을 차리고 ‘3.5집’ 미니앨범 <스탠드 업 어게인>을 냈다. 반응도 좋다.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방송 출연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젠 대중도 음악이 좋으면 인디건 뭐건 가리지 않아요. 또 인디밴드라 해서 무조건 방송 거부하고 그러지도 않고요. 다들 자기 음악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 하죠.”

노브레인은 얼마전 카우치의 생방송 알몸 노출 사건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려 애쓴다.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 뒤 속초에서 다른 가수들과 한 무대에서 섰는데, 사람들이 우릴 보고 쑥덕대더라고요. ‘쟤들도 똑같은 애들 아냐?’라고요. 위축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길이겠죠?” 이들은 지난 7일 생방송 무대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선보인 데 이어, 오는 27일 레이지본과의 합동 콘서트 ‘도발’도 원래대로 추진할 예정이다.

글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당신의 기준으로 예술적 상상력 재단마라”

무용수 김민정(32)씨는 춤 추는 것만으론 모자라 지난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참회의 방’이라는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텐트 안에 연필과 종이를 둬 무엇이든 써붙일 수 있도록 한 조촐한 방은 이내 관객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찼다. “와, 그런 반응일줄 몰랐죠. 상상을 펼쳐볼 수 있는 자리가 프린지페스티벌이에요.”

12일부터 ‘프린지페스티벌’
무용·미술·연극등 532가지 활동
국외 6개나라 예술가들도 참여

“당신의 기준으로 예술적 상상력 재단마라”
인디는 음악뿐이라고 생각하는 건 코끼리 꼬리정도 어루만지며 만족하는 격이다. 무용·미술·연극·음악인 등이 관객과 함께 나누는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독립적이고 독창적으로 활동하는 ‘인디’ 영역의 광대한 스펙트럼을 접할 수 있다. 1998년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해 2001년 ‘인디문화의 인큐베이터’ 홍대 앞으로 옮겨온 이 축제는 다양한 문화적 상상력의 분출구로 자리매김했다.

상업성 또는 권위주의가 답답해진 한 무리 예술가들이 ‘축제나 해볼까’ 쌈짓돈 털어 질러본 게 8년째 이어졌다. 당시 인디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 이들의 꿈에 풀무질을 해댔다. 이 ‘도발’엔 사회도 놀랐고, 반응에 주최쪽도 정신이 번뜩 났다. ‘한번에 끝낼 게 아닌걸.’ 일 먼저 벌이고 조직정비에 들어간 셈이다.

막 키운 애들 쑥쑥 자라듯 프린지페스티벌도 몸집을 키워갔다. 독립예술제란 이름의 첫회엔 80개팀이 참여해 관객 5만명이 모였다. 올해는 302개팀이 복닥거리고 관객도 20만명은 될 거라고 주최쪽은 내다보고 있다. 이렇게 웃자란 데는 ‘대중 속으로’라는 진지한 고민도 한몫했다.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거리공연 ‘중구난방’이 홍대앞 놀이터에서 걷고 싶은 거리로 점차 확대되는 건 이런 고민의 한 결과물이다.

물리적 공간만 넓어지는 건 아니다. 교류의 폭도 아시아로 확장됐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보면 아시아도 문화·예술 측면에서 ‘프린지’(주변부)다. 2002년부터 시작한 교류의 맥을 이어 올해엔 대만, 싱가포르 등 6개 나라 예술가들이 공연, 심포지엄 등에 참여한다. ‘리틀아시아 크리에이터스 미팅’에서는 아시아 예술가들이 머리를 맞대 내년에 올릴 공동 작품을 구상한다는데 뭐가 나올지는 아직 그들도 모른다.

커지고 복잡해져도 프린지의 단순한 핵심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오는 예술가 안 막는다는 거다. 타인의 기준으로 예술적 상상력을 재단하지 않는다. 이는 1947년 영국에서 이른바 ‘주류 공연예술’의 대항 세력으로 시작한 프린지페스티벌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당신의 기준으로 예술적 상상력 재단마라”
이와 달리 변했으면 하는데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가난하다는 점이다. 서울문화재단, 문화관광부, 기업 쪽에서 협찬도 받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돈이 모자란 건 노동으로 때운다. 1인3역 하는 사무국의 9명은 축제 한달전부터 주변에 방 잡고 밤인지 낮인지 헷갈리게 일한다. 자원활동가인 ‘인디스트’ 160여 명은 홈페이지 제작 등을 맡아 준다.

이들의 땀을 닮은 ‘몽유열정가’라는 주제로 올해도 어김없이 홍대 앞에서 12일~28일 17일 동안 축제는 벌어진다. 고성방가(음악축제), 내부공사(미술전시축제), 암중모색(아시아독립영화제), 이구동성(무대예술제), 중구난방(거리예술제)으로 꾸려지며 532가지 예술 활동이 문화적 상상력의 경계 넘기를 감행한다. seoulfringe.net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프린지네트워크 제공

라이브클럽-댄스클럽 따로 있어요

서울 홍대앞 클럽을 한 꾸러미에 담는 건 무모하다. 공간마다 독특한 취향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크게는 공연 중심의 라이브 클럽과 힙합·일렉트로니카 등에 맞춰 춤출 수 있는 댄스클럽으로 나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홍대앞 인디문화의 터전이 됐던 라이브클럽은 15곳이 운영 중이다. 초기엔 음악공연 뿐만 아니라 영화제, 전시회도 열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구실 했다. ‘델리스파이스’, ‘마이앤트메리’ 등 실력을 인정받는 밴드들이 대중과 만나며 역량을 키워가던 공간이기도 하다.

라이브클럽도 음악적 성향에 따라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뉜다. 예를 들어 클럽 ‘빵’에서는 말랑말랑한 모던록을 주로 즐길 수 있다. ‘스컹크헬’은 시원한 펑크록이 중심이다. ‘롤링스톤즈’에서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음악들까지 접할 수 있다. 이밖에 ‘에반스’ 등 재즈 클럽 6곳, 롤링홀 등 전문공연장 2곳이 있다.

식상하지 않는 음악을 좇아 라이브클럽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하지만 초기에 비해 이곳 분위기가 침체된 건 사실이다. 상업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치솟은 임대료, 영세한 규모 등이 엎친 데 덮쳤다.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2002년부터 라이브음악발전협회는 매월 첫째주 금요일 클럽 10곳을 돌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라이브페스트’를 벌인다. 김영등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대표는 “차세대 인디밴드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1999년께부터 테크노의 인기가 치솟으며 댄스클럽들이 홍대 앞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춤추는 공간이라고 퇴폐적일 거라 단정하는 건 위험한데, 이 클럽들도 힙합·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인 까닭이다. 힙합 클럽으로는 엔비, 코스모, 사브 등이 있고, 일렉트로니카 쪽으로는 카고, 엠아이, 엠투, 툴 등이 유명하다. 이런 클럽들이 속해 있는 클럽문화협회가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벌이는 ‘클럽데이’엔 평균 6천여 명이 몰린다. 이밖에 프리버드, 워터콕 등 8개 라이브클럽에서 재즈, 레게, 록까지 들을 수 있는 ‘사운드데이’는 매달 둘째주 금요일에 열린다. 클럽문화협회 clubculture.or.kr, 라이브음악문화별전협회 cafe.daum.net/liveclubfest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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