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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피아노로 읊은 ‘서울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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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새벽 첫 이피 ‘서브마린…’
이미지 앞세운 가사
전자음·일상의 소리 섞어
현살의 무의미 읊조린다
“솔파미…소…ㄹ”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나 왕자웨이 감독의 <중경삼림>의 주인공들은 외로워 죽겠다고 바깥 세상에 칭얼거리지 않았다. 혼자 차가운 맥주에 두부를 먹거나 운동장을 달릴 뿐이었다. 부유하는 순간과 내면을 향해 열린 시선은 냉소적이고 탐미적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세련된 쓸쓸함은 모든 게 불확실해져버린 젊은이들의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았다.
한희정(26·보컬)과 정상훈(28·기타)의 ‘푸른 새벽’은 이런 정서를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꾸밈 없는 목소리에 실어왔다. 5~6곡씩 이피 두장에 나눠 담은 <서브머린 시크니스(잠수병)+웨이브리스(파동 없는)>는 그 연장선과 변화를 함께 보여준다.
첫번째 이피(앨범보다 곡수가 적은 것) ‘서브머린’은 기대 대로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는 깨어나기 싫은, 감미롭고 노곤한 꿈을 꾼다. 두 번째 ‘웨이브리스’는 일렉트로니카 요소를 가미해 더 깊이 침잠한다. “우리 음악이 우울하다고들 하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감정은 복잡해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규정할 수 없는 건 흔들리는 방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노랫말엔 이야기의 논리적 연결 대신 이미지들이 떠돈다. “다른 또는 넓은 길은 오래 전부터 없던 거였어”(‘친절한 나의 길’), “빈 방을 거닐던 내 긴 한숨은 꿈으로”(‘호접지몽’)…. “내용 안에서 결론 짓고 ‘이렇게 느끼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해석은 듣는 사람들의 몫으로 열어둬야죠.”
그들에게 언어는 변화무쌍한 느낌을 잡아내기엔 너무 거친 도구다. 의미는 낱말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곡 설명을 요구하면 대답은 곧잘 갈지자를 걷는다. “예를 들어 ‘친절한 나의 길’이란 노래는 이런 상황을 표현한 거예요. 모두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없는 것. 길이 정해졌다는 건 자포자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죠.”(한희정) “꼭 포기는 아니죠. ‘결국 이렇게 됐는데 어찌할 거냐’ 그런 거죠….”(정상훈) 되레 그들의 찰랑거리는 기타 선율, 여운 깊은 목소리가 더 직설적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두 번째 이피에서는 여기에 전자음과 생활의 소리도 섞었다. ‘별의 목소리 1·2’엔 정상훈의 작업실 창으로 흘러들어온 차, 새, 사람 소리들이 스며들었다. “길거리를 걸으며 독백하는 듯한 느낌이에요.”(정상훈) ‘별의 목소리’라는 제목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영화에서 따왔다. “미래에 우주 전쟁이 일어나요. 여자가 우주인으로 뽑혀 가는 바람에 애인과 헤어져요.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기다림도 깊어져요. 메시지 하나 주고받는 데 5년, 8년, 10년 이렇게 걸리죠. 여자는 왜 싸우는지 몰라요. 단지 남자 친구랑 편의점에 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들이 세상에 두 번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파동도 없이 잠수해 있었죠.” 한희정은 사무직으로 일하며 서울 동대문 옷 상가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정상훈은 홈페이지 만드는 일을 했다.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 힘드니까요.”(정상훈) “그래도 일하는 게 도움이 되요. 감성의 경험이 쌓여요.”(한희정)
2001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에 있던 공연공간 ‘빵’에서 만난 그들,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 탐미적인 그물망에 잡히면 회색빛 일상마저 물기를 머금고 반짝인다. ‘피아노’라는 노래에는 차 소리, 나른한 하품, “솔파미파라솔” 한희정의 의미 없는 읊조림만 있다. 속으로 삭히는 의미들은 곧장 내뱉어지지 않기에 느낌이 깊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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