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14 17:08
수정 : 2018.02.1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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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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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폭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이 감독 “깊이 반성·근신” 간접 표명에
“진정성 있는 사과가 문제 해결 시작
지금도 말 못하고 고민할 연극인들
괜찮으니 힘들어 말라 전하고 싶어”
연극계 “미투 운동으로 공론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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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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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말 못 하고 고민하고 있을 많은 연극동지들에게 괜찮다고 힘들어하지 마시란 말을 전하고 싶다.”
14일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는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취지의 말을 꺼냈다. 그는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에 “직접 만나 드릴 말씀은 더 없는 것 같다”며 정중히 거절하면서도 짧은 문자 메시지로 자신의 심정을 압축해 전해왔다.
이날 새벽 김수희 대표는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려 이윤택 감독이 10여년 전에 자신을 추행한 사실을 밝혔다. 그는 “<오구> 지방 공연 당시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짐을 푸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내가 받았고 전화를 건 이는 연출이었다.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고 썼다. 이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가 누워 있었고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바지를 내렸고, 자기 성기 가까이 내 손을 가져가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 내 손을 잡고 팬티 아래 성기 주변을 문질렀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이윤택 감독이 “연습 중이든 휴식 중이든 꼭 여자 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윤택 감독이 연극계의 거물이라는 점에서 김 대표의 용기 있는 발언에 연극계 관계자들은 놀라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극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오디션을 보거나 추천으로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힘 있는 이가 ‘걔는 별로다’라고 말하면 일하기 쉽지 않다. 이른바 찍히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피해자도, 지켜보는 이들도 대부분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에스엔에스에서 이윤택 감독을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고 표현하며 이후 “대학로 골목에서, 국립극단 마당에서 그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도망 다녔다”며 “피하는 방법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논란이 일자, 이윤택 감독은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소희 대표는 이날 오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감독은 깊이 반성하며 모든 걸 내려놓고 근신하겠다고 하셨다”며 “3월1일 공연이 예정됐던 <노숙의 시>부터 취소하고, 진행중이던 다른 작품들도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수희 대표는 문자 메시지에서 “이윤택 선생의 직접 해명과 반성만이 많은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로 들리지 않을까요? 거기서부터가 문제를 풀기 위한 시작이 아닐까 싶다”며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대신 발언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연극계에서도 본격적인 ‘미투’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대표가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도 더 지나 폭로를 결심한 이유도 이윤택 감독이 계속 문화계 유명 인사로 ‘건재’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지난 2015년 국립극단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더는 국립극단 작업을 안 하기로 하는 선에서 조용히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희 연극평론가는 “연극계에도 성폭력 관련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며 “연극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김수희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노력들이 이어져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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