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6 18:09
수정 : 2018.02.27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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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월 자코메티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빚은 작품인 로타르의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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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국내 첫 회고전
마지막 작품 ‘로타르 좌상’ 등
조각·드로잉 120여점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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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월 자코메티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빚은 작품인 로타르의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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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월 11일 밤 조각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고향인 스위스 쿠어에서 숨을 거뒀다. 64살. 과로에 따른 합병증이 도진 결과였다.
그의 동생이자 생전 단골모델이던 디에고는 장례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다음날 곧장 밤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고인의 작업실로 내달렸다. 난방이 안돼 꽁꽁 얼어붙은 작업실 한 구석에서 얼어붙은 천에 가려진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업을 찾아냈다. 앉은 남자의 좌상.
자코메티가 죽기 한달 전 아직 완성하지 않았다며 애착을 드러냈던 작품이라는 걸 디에고는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더워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난로 온도를 올렸다. 마침내 냉기가 풀린 천의 헝겊들을 걷어내자 깨어지지 않은 진흙상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형형한 시선이 주위 공간을 빨아들이는 생명력 넘치는 걸작이었다. 디에고는 작품을 주물로 떠서 형의 무덤 옆에 놓았고, 원본은 자코메티 재단에 영구보관시키게 된다.
로타르 좌상으로도 불리는 이 자코메티 최후의 명작을 지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만나게 된다. 사후 52년만에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자코메티 회고전의 말미에 자리한 대표작이다. 자코메티는 실패한 파리의 사진가 로타르를 불러들여 작업실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를 모델로 작업했는데, 로타르의 얼굴에서 실존하는 한 인간의 위대한 전형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기이하게도 영화감독 샤이데거는 자코메티가 마지막 작품 로타르 좌상의 진흙상을 제작한 뒤 천을 씌우고 헐레벌떡 나가는 장면을 우연히 필름에 담았다. 전시장에서는 로타르 상과 더불어 이 필름영상까지 볼 수 있어 처연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파리 자코메티 재단의 소장 원본 조각과 그림, 드로잉 등을 국내 처음 대거 선보이는 이번 회고전은 로타르 좌상과 더불어 2010년 미국 뉴욕경매에서 1100억원에 낙찰돼 조각품으로 역대 최고가 낙찰기록을 세운 <걸어가는 사람>의 석고 원본도 전시중이다. ‘명상과 침묵의 방’으로 이름붙여진 암전된 공간 가운데 낮은 조명을 받으며 서있는 <걸어가는 사람>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가오는 이미지의 상들이 달라진다. 온통 깡마르고 앙상한 높이 188cm의 몸체에 숱하게 겹쳐바른 석고 덩이들이 빛난다. 정면에서는 실존의 고뇌로 가득찬 얼굴의 거친 질감이, 옆면에서는 걸음을 옮기는 인간의 실루엣이 강렬한 존재감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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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의 1960년작 <걸어가는 사람>. 자코메티 재단 소장 원본이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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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눈대목이라 할 두 작품 외에 작가의 초기시절부터 말기까지 망라한 조각, 드로잉 120여점이 다기한 설명 패널과 함께 놓여지거나 내걸려있다. 고향인 스위스 스탐파에서 아름다운 대자연과 화가였던 부친의 작업실 등을 거닐면서 이어졌던 유년 시절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장년과 말년 기간(1960~1965)까지 조각거장의 예술적 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등의 실존주의 철학자들과 40년대 이래 교유하면서 눈이 아닌 몸을 통해 바라본 존재의 진실을 실현하려 했던 거장 특유의 뼈대만 남은 앙상한 실존 조각의 진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동생 디에고를 묘사한 드로잉과 조각상, 생전 마지막까지 함께 한 부인 아네트와 최후의 뮤즈였던 캐롤린 등을 모델로 빚어낸 다양한 두상들이 대작 못지않은 관람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조각세계를 구성하는 또다른 핵심이었던 20~30년대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조각과 그에 대한 설명들이 뭉텅이째 빠진 점이 아쉽긴 하지만. 올해 연초와 새봄 가장 주목할만한 서구 미술사 전시로 꼽을 만하다. 4월15일까지. (02)580-13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자코메티 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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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60년 만든 대작 <걸어가는 사람>. 전시장 마지막 공간의 ‘명상과 침묵의 방’에서 단독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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