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3.04 13:16 수정 : 2018.03.05 00:50

광복군·독립군 희귀 유품 한자리
‘독립군ㆍ광복군에서 대한민국 육군으로’ 특별전시회

우리나라에 딱 한 벌 남은 광복군 군복과 직책임명장, 독립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주에서 그려 보낸 그림 등 독립운동 당시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귀한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일 육군사관학교에서 개막한 ‘독립군ㆍ광복군에서 대한민국 육군으로’ 특별전시회이다.

교내 생도 종합 교육시설인 충무관 1층 기획전시공간에 3개의 전시실(의병ㆍ독립군실, 광복군실, 안중근 장군실)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모두 70여 점의 유물이 선보이는데 국립중앙박물관, 독립기념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우당기념관, 개인 소장자가 뜻을 모아 진품을 출품했다.

한국광복군 예비대 군복. 육군 제공
한국광복군 군복 1945년께 한국광복군 예비대의 군복으로 상하의와 군모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한국광복군 복식의 대표적인 유물로 현재 국내에 딱 한 점 남은 광복군 군복으로 알려져 있다. 진품이 전시된다.

우당 이회영의 묵란도와 우편봉투. 육군 제공
우당 이회영 선생의 묵란도와 우편봉투

우당 이회영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라"고 우당 이회영이 만주에서 서울에 살던 딸 이현숙에게 그려 보낸 묵란도이다. 그림을 담았던 봉투도 함께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교육인이자 사상가로 독립운동에 앞섰던 우당은 여섯 형제와 가족들이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건너간 뒤 독립군 양성의 산실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일로 유명하다. 이번에 만나는 그의 묵란도는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에도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1920년대 만주에서 손수 그려 서울에 살던 딸 이현숙에게 보낸 작품이다. 그림에 보이는 글은 동생 이시영이 1946년 추가한 제사다.

지청천 장군의 일기. 육군 제공
지청천 장군의 일기. 육군 제공
지청천 장군 일기

지청천 장군
지청천 장군은 배재학당과 한국무관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근대적인 군사지식을 습득한 당시의 엘리트 군사인재였다. 3.1운동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해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이후 일제의 독립군 말살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에는 서로군정서를 지휘하며 일군과의 교전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광복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한국군을 대표하는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광복 뒤 본인의 활동과 과거 독립전쟁 당시 상황을 회고한 내용이 이 일기에 담겨 있다.

김의한 광복군 직책임명장
김의한 광복군 직책임명장

김의한(1900~1964)이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부의 재정과 출납을 담당하는 직책인 주계에 임명되면서 받은 임명장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인뿐만 아니라 당시 국무위원 10인의 개인도장까지 찍혀 있는 희귀본이다.

전시는 육군사관학교(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안 충무관 1층에 3개의 전시실로 마련된 기획전시공간에 연중 계속 열린다. 전시 관람 시간은 매일 오전 10~12시, 오후 2~4시이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진 육군 제공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