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막강 콘텐츠 파워’ 아트바젤 홍콩
게임은 이미 결판났다. 아시아 미술의 허브? 미술한류? 그런 목표를 추구할 선택지는 거의 사라졌다. 이젠 강자들이 정한 시장의 법칙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9~31일 쇼핑·금융의 도시 홍콩에서 전례 없는 열기 속에 치러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미술품 장터(아트페어) ‘2018 아트바젤 홍콩’은 한국 미술판 사람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2013년 창설된 이래 올해로 6회째인 아트바젤 홍콩은 막 신생 티를 벗은 행사인데도 한국 미술시장이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물량과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과시했다. 조직위원회가 엄선한 32개 나라 248개의 주요 화랑이 참여한 이번 페어는 작품 판매를 위해 흥정을 하는 통상의 판매전람회 성격을 벗어나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홍콩의 대표 문화브랜드로 자리를 굳혔다. 다른 말로,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과 문화력에 빨려들어가는 세계 미술시장의 양상을 극명하게 표출했다고 보면 될 듯하다. 3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는 관람객 약 8만명이 다녀갔다.
|
우리가 먹는 식기를 거대하게 확대한 중국 작가 저우위청의 설치 작품.
|
미술장터 넘어 홍콩 문화브랜드로
스펙터클 현대미술 백화점처럼
시전공개마저 발 디딜 틈 없어
연간거래액 1조 ‘미술권력장’ #아트전용관 ‘에이치퀸스 빌딩’
아이웨이웨이 레고 자화상
요시토모 소녀상 조형물 등
대가 근작들 한자리서 보여주며
돈과 권력에 기댄 ‘덩치 미술’ 컨벤션센터 1층과 3층에 각각 차려진 전시장은 ‘갤러리스’ 섹션으로 대표되는 근현대 미술사 명품들의 성찬이 차려진 간이 미술관과 젊은 작가들 위주의 ‘인사이트’, 전위적인 설치 작업 중심의 ‘인카운터스’, ‘필름’ 섹션으로 표상되는 실험적인 전시 공간, 대중을 위한 아트파크 체험장, 아카데믹한 미술, 사회 담론을 논하는 토크쇼, 미각, 패션 이벤트까지 시각문화와 관련된 온갖 즐길 거리 등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컨벤션센터 부근 도심에는 페이스, 하우저 & 워스, 화이트스톤 등 명문 화랑들이 입주한 에이치퀸스 빌딩 등의 전용관이 앞서 문을 열어 아이웨이웨이, 나라 요시토모, 마크 브래드퍼드 등 대가들의 근작들을 선보였다. 각종 미술관, 아트센터, 경매사들의 참신하고 덩치 큰 기획전들도 때맞춰 잇따라 개막했다. 해협을 끼고 주룽반도와 마주 보는 해변가에는 대형 천막을 친 군소 중견 화랑들의 위성 아트페어(아트센트럴)의 무대가 차려졌다. 이런 여러 미술전이 아트바젤을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어울려 시너지를 내면서, 미술엑스포이자 고급스러운 아트 버라이어티쇼 같은 분위기를 낸 것이 행사 안팎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
에이치퀸스 빌딩 안 탕 갤러리에 나온 중국의 세계적 거장 아이웨이웨이의 근작.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레고블록으로 재현했다.
|
|
에이치퀸스 빌딩 안 페이스 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나라 요시토모의 소녀상 조형물들.
|
컬렉터들, ‘소황제’ 취향 맞춰 구애
중국 산수 현대미술로 바꾼 수작도
미국 비싼 작가 제프 쿤스조차
부스 나타나 관객과 기념촬영 # ‘K-아트’ 존재감 키워갈 때
백남준·이우환 유명작가 외에도
신학철·강요배 리얼리즘 재조명
김환기 ‘푸른색 점화’ 96억 제시
“전력질주 중국 현대미술과 격차 현지 관객들은 전례 없는 입장 열기로 화답했다. 일반 공개 전인 27, 28일 브이아이피 고객들의 쾌적한 관람을 위해 먼저 열린 사전공개 행사(프라이빗 뷰)부터 인산인해였다. 넘쳐나는 인파들 때문에 집중하며 작품을 보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수천평의 전시장 부스 구석구석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컬렉터들과 중국 부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한국 각지의 미술관, 비엔날레, 기획자, 유력 컬렉터들도 볼 수 있었다. 더 놀라운 풍경은 공식 개막일인 29일 일반 공개가 시작된 뒤 나타났다. 행사장 문을 열자 일반 관객들의 줄이 컨벤션센터를 여러 겹으로 싸고 돌면서 1㎞ 이상 장사진을 이루었다. 29일 입장권은 오전에 매진됐고, 관객들은 최소 1시간 이상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날 밤 9시까지 전시장이 개방됐는데, 저녁 시간 이후에도 북새통은 이어졌다. 홍콩에 소속 경매사 서울옥션 상설관을 최근에 차린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수년간 아트바젤 홍콩 전시를 지켜봐왔지만, 관객들이 컨벤션센터 건물을 몇 겹으로 둘러가며 줄 서는 풍경은 처음 보았다. 대중들도 미술전람회 차원이 아니라 흥미롭고 총체적인 문화 이벤트로 보는 인식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
올해 아트바젤 홍콩 행사를 계기로 홍콩의 새로운 미술명소로 떠오른 도심 에이치퀸스 빌딩의 모습. 세계적 화랑들이 가득 입주한 아트 전용 빌딩이다.
|
|
가고시언 갤러리가 출품한 백남준의 작품 <볼과 카메라>. 1974년부터 81년까지 볼 속에 카메라를 넣고 비디오아트 제작에 활용했던 작업 도구였다가, 볼이 터지자 아예 카메라와 붙여서 별도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
|
리먼 머핀 갤러리 부스 구석에 나온 서도호 작가의 천으로 만든 변기 설치물.
|
|
국제갤러리 부스 들머리에 내걸린 김환기의 푸른빛 점화 대작. 화랑 쪽이 거래가로 90억원대를 매겨 컬렉터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