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노래하는 평화운동가 홍순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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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센터 건립 종잣돈 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여는 가수 겸 평화운동가 홍순관씨가 지난 3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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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명 가수다. 노래만 부르는 가수는 아니다. 싱어송라이터다. 하지만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연출하는 음악감독도 맡는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노래하는 무대는 거의 대부분 조명도 배경도 갈채도 없는 길거리다. 다만, 그가 서는 공연,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한결같이 ‘~ 위한’이라는 주제가 담겨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30여년 불러온 그의 주제를 한마디로 아우른다면 ‘생명과 평화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가수 홍순관씨가 새 음반이 아니라 한글 붓글씨와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새 전시회 소식을 들고 지난주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왔다. 4일부터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홍순관의 먹과 쇠 전―시간은 나무처럼> 전시회를 연다.
“2014년에 이어 두번째 전시회이지만, ‘평화운동가 홍순관’ 이름으로, 평화센터 건립 종잣돈 모금을 시작하는 출사표인 셈입니다. 평화의 이야기가 흐르고 음악과 미술, 강연과 실천이 꿈틀거리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약속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한글 붓글씨·자동차폐품 조각 등 전시
내일 ‘먹과 쇠-시간은 나무처럼’ 개막
1994년부터 평화박물관 기금 공연
10년 모아 ‘전쟁여성박물관’ 주춧돌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활동은 접어
“직접 ‘센터’ 세우고자 종잣돈 마련 시작”
그는 1994년에서 2004년까지 10년 동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알리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대지의 눈물’ 공연을 진행했다. 그를 통해 모은 기금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위원회’가 발족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2005년부터는 10년 넘게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함께 모금공연 ‘춤추는 평화’를 펼쳐왔다. 2014년 첫번째 전시회 <역설의 꽃, 평화>를 열었던 목적도 기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최근 2~3년 사이 내홍 사태를 겪은 끝에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활동을 접기로 했어요. 지금껏 모아서 기부해온 상당한 건립기금의 관리가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도 했지만, 무엇보다 애초 목적인 평화박물관의 건립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저를 믿고, 제 노래를 듣고 후원해준 수많은 시민들과 약속을 지키고자 직접 나서기로 한 겁니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에는 그가 지닌 모든 재능과 그의 삶을 지탱해온 철학을 모두 쏟아부은 ‘혼신의 열정’이 담겨 있다. ‘쌀 한 톨의 무게’, ‘내가 드린 기도로 아침이 오지 않는다’, ‘나처럼 사는 건’ 등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와 단상을 붓글씨로 표현한 60여점을 소개한다. 또 부산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가 버려진 쇳덩어리나 자동차 폐부품을 용접해 공작새, 거북선, 꽃, 달팽이, 땅벌레 등등 새로운 물체로 되살려냈다.
“이질적인 장르인 붓글씨와 철조, 부드러운 먹과 강한 쇠 함께 묶어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눈만 뜨면 변해 있는 광속의 일상 속에서 묘혈의 길을 걷고 있는 지구와 문명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시간이 나무처럼 고요하게 느리게 단단하게 흐르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표현대로, 이질적인 ‘먹과 쇠’가 어떻게 그의 생각과 손끝에서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열 살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아버지께 한글과 구양순을 익혔습니다. 아버지는 왕희지와 구양순의 대가였습니다. 월정 정주상 선생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안방 장롱에 길게 걸려 있던 아버지의 글씨를 한참이나 말없이 감상하던 모습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그 인연으로, 월정 선생이 창간한 국내 첫 서예잡지 <월간서예>에 우리 부자가 나란히 수년간 글씨를 선보이기도 했지요.”
그의 부친 의연 홍종욱 선생은 치옹 윤오영, 금아 피천득 선생과 교유한 당대 마지막 선비였다. 하지만 서예를 전공할 수 있는 대학이 없어 부산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간 그는 글씨에서 멀어졌다. 1980년대 초반 민주화 투쟁의 전초기지였던 대학에서 그 역시 사회개혁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전공인 조각은 상대적으로 대중들이 어려워하는 탓에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대안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음악, 노래도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좋은 수단이더라고요.”
마침 초중고 때부터 독창대회에서 우승한 그의 노래 실력은 한때 음대 입학을 권유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고, 일찍이 다니던 교회와 화실에서 기타를 친 덕분에 대학축제 초청 가수로도 활약을 했던 그였단다. 그렇게 시작한 음악이 86년 이탈리아 조각 명문대 유학까지 포기하게 만들어 오늘날까지 그를 이끌어온 것이다.
“2014년 전시를 위해 30여년 만에 다시 붓을 들었는데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제 또래에 그런 문향과 문사의 기질을 물려받은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요. 이제는 맥을 이어야 한다는 소명 같은 것도 느낍니다.”
또 다른 전시 주제인 ‘쇠’는 고철 덩어리가 자연으로 돌아오는 죽음과 부활의 기도를 표현한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한,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 아이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의 아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고통, 4·3항쟁… 그가 함께해온 모든 현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평화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전시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다. 4월7일 토요일 오후 3시에는 가수 홍순관의 공연도 볼 수 있다.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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