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9 15:07
수정 : 2018.04.19 22:00
다섯달간 순위권 밖 머물다 4월12일부터 8일째 멜론 차트 1위
팔로어 많은 페이스북 채널에서 비슷한 시기 집중 노출
일반인 노래 동영상에 소속사 관계자가 올리기도
광고를 눈속임하던 파워블로거처럼 제재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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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즈 쪽이 다른 레이블에 보낸 제안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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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31일 발매 이후 약 다섯달 동안 집계 순위권 밖을 맴돌던 닐로의 노래 ‘지나오다’가 지난 3월 말부터 음원 차트에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12일 새벽부터 8일째(19일 오후 3시 기준)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 신곡을 발표한 김하온, 트와이스, 첸백시, 위너 등 음원 차트 강자들을 꺾은 ‘역주행’의 동력을 놓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이 수백, 수천개의 아이디로 같은 음악을 반복 재생해 순위 상승을 꾀하는 ‘공장 스트리밍’, 즉 사재기가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자 닐로의 소속사인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쪽은 ‘노하우’로 차트를 공략했을 뿐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노하우’의 정체는 뭘까.
<한겨레>의 취재 결과 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다수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연속으로 포스팅하는 방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입수한, 리메즈 엔터테인먼트가 2017년 다른 기획사들에 낸 제안서를 보면, 한달에 300만~500만원 정도를 지급하면 약 18개 페이스북 페이지에 동영상을 노출해주겠다는 제안이 적혀 있다. 이들이 소유하거나 제휴했다고 밝힌 페이지 중엔 ‘널 위한 뮤직차트’, ‘너만 들려주는 음악’ 등이 포함돼 있다. 팔로어 89만명을 거느린 ‘너만 들려주는 음악’은 3월22일 밤 11시30분 닐로의 노래를 소개했고, 12만명이 팔로하는 ‘널 위한 뮤직차트’는 이튿날인 저녁 7시 “지금 역주행 중인 닐로 지나오다. 노래 미쳤다”며 이 노래를 공유했다. 리메즈의 제안서엔 나오지 않은 페이지이지만, ‘지나오다’ 음원 순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무렵인 3월22일 밤 9시 오후 ‘감성플레이어’(팔로어 17만명)는 “노래는 좋은데 소속사가 일 안 해서 묻힌 노래”라는 글과 노래를 실었고, 직후 10시10분엔 ‘역대급 노래 동영상’(54만명) 페이지가, 23일 저녁 7시엔 ‘요즘 힙하다는 노래 동영상’(73만명) 페이지가 “왜 안 뜬 거냐고 난리 중인 노래”라며 ‘지나오다’를 공유했다. 멜론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차트 공개 범위에 들지 못해 무의미했던 닐로의 순위는 집중 포스팅이 끝난 3월23일 자정부터 100위권 안에 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 닐로 노래를 포스팅한 페이지들의 공통점은 운영자가 개인인지 회사인지, 특정 업체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3월22~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입소문이 나자 이번엔 ‘일반인’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른바 ‘가창 영상’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및 유튜브에는 실용음악과 노래 전공자들과 가수의 꿈을 가진 이들이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중 닐로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영상들을 확인한 결과 소속사 관계자가 부르고 올린 영상이 여럿 확인됐다. 특히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 계정을 통해 널리 퍼진 한 가창 영상은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소속 실장 겸 소속 아티스트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를 운영하는 ‘딩고’(사명 메이크어스) 쪽은 “일반인들의 영상을 업로드 형태로 제보받고 있어 금전이 오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소속사 관계자가 소속 가수의 노래를 불러 일반인인 것처럼 제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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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소름 돋는 라이브’ 계정이 공유한 리메즈 직원의 라이브 영상.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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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즈 엔터테인먼트는 “우리는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에스엔에스(SNS)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광고 툴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스엔에스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는 것이다.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의 이시우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형 소속사의 매니저가 방송사 피디들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을 해서 가수를 방송에 내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우리는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너만 들려주는 음악’ 페이스북 페이지가 광고인지 아닌지, 따라 부르기 영상에서 노래 부르는 이가 가수와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스텔스 마케팅’(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에 노출돼 음원을 구매하고 있는 점이다. 음악평론가 배순탁씨는 “지금은 사회 전반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윤리’가 화두가 됐다. 대중들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음반 산업 관계자는 “윤리 차원뿐 아니라 이런 방법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마케팅이 아닌 어뷰징의 방식으로 가요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금전적 대가를 받고 광고를 노출했음에도 광고임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페이스북 계정에 노래를 올린 것만으로 광고로 볼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광고와 ‘광고의 효과를 보는 것’은 법적으로 다르다. 광고의 효과를 보는 모든 것을 규제의 대상으로 넣을 수는 없어 앞으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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