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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0 05:00 수정 : 2018.09.12 19:21

광주비엔날레관 3전시장에 나온 터키 작가 할릴 알틴데레의 <쾨프테 항공사>(2016). 시리아 난민이 이륙하는 비행기 꼭대기에 앉아있는 가상 항공사의 포스터를 통해 난민 문제를 풍자하고 있다.

[100℃] 국내 3대 비엔날레를 가다

광주비엔날레관 3전시장에 나온 터키 작가 할릴 알틴데레의 <쾨프테 항공사>(2016). 시리아 난민이 이륙하는 비행기 꼭대기에 앉아있는 가상 항공사의 포스터를 통해 난민 문제를 풍자하고 있다.
한국미술판은 2000년대 이래로 짝수해 가을엔 ‘비엔날레’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란 뜻의 이탈리아 말로 격년제로 여는 국제미술잔치다. 한국에서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생긴 뒤 10여개 지자체들이 크고 작은 비엔날레를 자체 브랜드처럼 창설, 운영해왔다. 특히 9월초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는 3대 행사로, 국내외 유력미술인들이 많이 찾는 살롱 구실을 한다. 올해도 5~7일 잇따라 시작한 서울, 광주, 부산 비엔날레 일정에 맞춰 각지 미술관, 화랑의 전시와 이벤트들이 꾸려질 정도다.

광주비엔날레
기획자만 11명…역대 최대 규모 과시
‘경계’ 주제로 난민 이슈 등 풀었지만
기존 스타일 답습…‘한방’ 메시지 희미

부산비엔날레
북한 소재 다큐작업 눈길
‘또다른 광주’인듯 비슷한 내용
스펙터클 영상 위주 감상엔 편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기획자 잇단 하차로 전시 산만
장애인·래퍼·그린피스 활동가 등
비미술인 목소리 직조한건 신선

이런 위상에도, 올해 3대 비엔날레들은 미술관의 벼락치기 대형기획전에 가까워보인다. 비엔날레의 본령대로 2년간 준비한 게 아니고, 4~6달 사이 전시를 급조한 까닭이다. 조직기구 내분이나 재단 개편, 기획자와 주제 선정 과정의 진통으로 준비에 뒤늦게 들어가는 후진 관행이 다시 도졌다. 기간은 촉박한데, ‘상상된 경계들’(광주) ‘비록 떨어져 있어도’(부산), ‘좋은 삶’(서울)이란 주제를 내걸고 총감독 없는 집단기획진(콜랙티브) 같은 파격을 내세워 전시를 짰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전시장에 나온 쿠바작가 크초의 설치작품 <잊어버리기 위하여>. 백여개의 맥주병 위에 허름한 나룻배를 얹은 이 작품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1회 전시 대상작으로 23년만에 재전시됐다. 광주비엔날레 5섹션 ‘지진:충돌하는 경계를’의 출품작.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는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평가된다. 68학생혁명 이래로 90년대까지 급진 미술담론의 온상으로서 구실해왔으나, 2000년대 들어 정치적 메시지가 남발되면서 전시틀이 진부해졌고, 300여개 행사가 난립해 국력과 문화력을 과시하는 무대로 변질됐다. 최근에는 바젤아트페어 등 시장자본에 밀리면서 위상도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정작, 국내는 거꾸로 간다. 지자체와 미술인들이 충분한 숙고 없이 개념만 앞세워 전시를 차려내는데 급급하는 관행이 올해는 더욱 심화됐다. 지난주 세 곳 비엔날레를 돌아본 미술인들의 중론은 대안성을 찾기 어렵고 국제비엔날레의 상투적 문법만 극대화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광주비엔날레관 2전시장에 나온 카데르 아티아의 설치영상물 <이동하는 경계들>(2018). 구두 신은 의족과 신발, 그리고 국가폭력을 증언하고 치유하는 영상물을 통해 국가형성이 개인의 기억에 미친 영향을 말하는 작품이다.
■ 인맥과 포장술이 돋보인 역대 최대 전시 12회째인 광주비엔날레(11월11일까지)는 국내에서 역대 최대규모의 전시를 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개국 작가 165명이 300여점을 내놓은 이번 회는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비엔날레 재단대표인 김선정 총괄큐레이터 아래 7개 섹션을 꾸린 기획자만 11명이다. 2000평 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3개 전시, 광주 용봉동 비엔날레관에서 4개 전시가 펼쳐진다. 또, 지비(GB)커미션이란 제목아래 국외 유명작가가 옛 국군병원 등 시내 곳곳에서 80년 광주의 기억을 영감 삼아 펼치는 설치작업을 비롯해 팔레드 도쿄 같은 국외 주요 전시기관 3곳이 시내 건물에서 벌이는 파빌리온 프로젝트, 시민 참여 행사까지 합치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버금간다는 말이 나온다.

광주비엔날레 6관에서 북한의 집단창작 조선화와 문인화들을 선보인 북한미술전. 강창광 기자
지난 6일 돌아본 용봉동 비엔날레관에는 ‘경계’ 주제를 난민과 국경 이슈로 해석한 여러 국내외 작가들의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 등장했다.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의 대형 설치작품, 난민의 기억을 담은 캄보디아 작가 스베이 사레스의 연꽃무늬 자화상, 중국의 누리꾼들을 가로막는 인터넷 접속 장벽을 풍자하는 중국 작가 미아오잉의 설치장벽 등이 눈에 들어왔다. 전당 전시장에는 1회 비엔날레 대상작인 쿠바작가 크초의 맥주 병 위의 유랑하는 배 설치작업을 다시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에서 기획자들은 각기 자기들만의 관심사를 이야기할 뿐, 국가간 민족간 경계의 변화된 담론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일관되게 집약하는데는 실패했다. 전당 창조원 6관에서 북한의 집단창작 조선화와 문인화들을 선보인 북한미술전은 비엔날레 틀에 걸맞지 않은 소개전 형식에 진위나 입수경로 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을 들여와 뒷말을 낳기도 했다. 단, 지비 커미션의 일환으로 옛 국군광주병원에 나온 카테르 아티아의 침목 작업과 부근 폐교회 내부를 거울 설치물로 채운 마이크 넬슨의 설치물들은 배경이 된 장소의 역사성을 부각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현장을 돌아본 한 중견 평론가는 “전시 섹션 대부분은 기존 비엔날레의 연출 스타일을 답습한 것들로 작품이나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고, 전시의 규모와 기획진의 인맥 같은 전시 외

적인 요소들이 더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2018부산비엔날레 본전시(부산현대미술관)에 나온 천민성 작가의 설치작업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북한에서 인기있는 암거래 상품인 초코파이를 팝아트풍으로 쌓아놓았다.
■ 부산 타워와 금고문이 돋보인 전시잔치 부산비엔날레(11월11일까지)는 해운대 시립미술관에서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과 영도다리 부근 원도심의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로 전시장을 옮겼다. 냉전시대 영토의 분리와 이산이 사람들에게 준 충격을 살펴본 올해 행사의 참여 작가는 34개국 66명(팀).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다. 전시감독인 크리스티나 리쿠페로, 외르그 하이저는 “작가수를 축소하고 주제 집중도를 높여 대안적 비엔날레를 모색하고 싶었다”면서 ‘분열된 영토’를 이야기하는 출품작들을 주로 배치했다. 남북한, 중국과 타이완, 독일, 베트남 등 분할, 분단을 겪은 나라, 지역의 사람들 경험과 이런 경험이 심리적으로 미친 영향을 조망한 작품들이 많다. 독일 통일의 과정과 후유증을 독특한 영상으로 표현한 독일의 헨리케 나우만, 골란고원의 비극을 담은 영상물 ‘어머니의 날’을 상영하는 이스라엘의 스마다 드레이푸스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나왔다. 남북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는 천민정의 ‘함께 먹어요 초코파이’ 같은 팝적인 대형설치작업과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클래스’ 같은 북한 다큐작업들이 눈길을 끈다. 난민, 이산, 북한을 주된 소재로 다룬 전시 내용들이 광주의 또다른 섹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중복되는 느낌이다. 다만 출품작이 적어 동선에 여유가 있고 스펙터클한 영상 위주로 꾸며 감상은 훨씬 편하다. 옛 한은건물은 모던한 이미지의 금고 정밀장치와 건물 창으로 비치는 부산타워의 보랏빛 야경이 색다른 매력을 내뿜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장에 나온 애드버스터즈 미디어재단의 트럼프 풍자 작품. ‘쿨한 파시즘’이란 글귀가 붙었다.
■ 낮은 자리의 사람들이 이끌어낸 전시 서울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에 차려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11월18일까지)는 개막 이전부터 파장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4월 주제를 확정할 당시 6명의 집단기획자의 수장격으로 주제와 전시구성안을 냈던 최효준 전 관장이 성희롱 의혹으로 중도하차했다. 기후변화 기획작업을 하던 그린피스 운동가 한명도 물러나 개막 직전 두명의 기획자가 빠지는 상황에서 겨우 전시장을 꾸렸다.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의 전시장 들머리에 나온 김상돈 작가의 설치작업 <바다도 없이>. 글자가 빽빽히 적혀 난독증을 일으키는 종이돛, 빈 냄비 등을 달고 내부는 텅빈 카트를 놓았다. 대중이나 작가들과의 속깊은 교감이나 공감 없이 전시 포장하기에만 급급하는 국내 비엔날레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16개국 작가 68명의 작품 74점이 출품된 이번 비엔날레는 경제학자 홍기빈씨와 기획자 김장언씨, 무용평론가 김남수씨 등이 난상토론으로 주제와 기획을 정했다. 그러나 촉박한 시간에 쫓겨 이들은 사실상 공감대를 못찾고 주제 ‘좋은 삶’에 대한 다른 생각과 이미지 작업들을 1~3층 전시장에 뒤섞어 배치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작가, 무용가, 래퍼, 장애인, 비장애인 등 다양한 이들의 토론과 탐방, 답사, 탐구의 결과물들이 패널의 글과 도표, 영상, 노래 등으로 뒤섞인 전시장은 복잡하고 산만하다. 빈 카트 위에 난독증을 일으키는 빽빽한 글자 종이 돛을 건 김상돈 작가의 들머리 설치작품 ‘바다도 없어’는 이런 상황에 대한 통렬한 자기풍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획진이 구멍난 상황 속에서도 낮은 자리의 사람들이 만든 역작들이 빛난 점은 작은 성취라 할만하다. ‘춤추는 허리’ 같은 장애우 여성극단원들이 이태원, 세월호 팽목한을 탐방한 모습을 담은 영상작업이나 래퍼들이 그린피스와 협력해 지구기후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만든 랩 영상과 공연 등은 비미술인의 언어로 낮은 곳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 신선한 감흥을 안겨주었다.

광주·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각 비엔날레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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