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19 05:00
수정 : 2018.10.19 13:41
|
정규 8집 <리모델링>을 발표한 크라잉넛 멤버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박윤식(보컬·기타), 김인수(건반).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8집 앨범 ‘리모델링’ 내놓은 악동들
“달라진 세상에 뒤쳐질 순 없다!”
‘펑크=자유’ 바탕에 다양한 음악적 시도
홍대 앞 쫓겨나는 라이브클럽 등
변하는 세상이 주변부로 밀어낼 때
“우리는 노래로 맞서는 이방인”
생리현상으로 이별의 아픔 담아낸
‘똥이 밀려와’ 방송서 금지되기도
|
정규 8집 <리모델링>을 발표한 크라잉넛 멤버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박윤식(보컬·기타), 김인수(건반).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말 달리기 시작한 지 어느덧 23년. 여전히 지치지 않는 크라잉넛이 정규 8집 <리모델링>으로 돌아왔다. 7집 이후 5년 만이다.
최근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크라잉넛에게 대뜸 물었다. 왜 이리 오래 걸렸냐고. “술 먹고 노느라고요.”(김인수·건반) 크라잉넛다운 대답, 한결같다. 다만 앨범 제목에선 뭔가 변화의 의지가 느껴진다. “우리가 23년을 해왔잖아요. 이제 리모델링을 할 때가 되긴 했죠.”(한경록·베이스) “재건축은 다 부수고 새로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 리모델링은 뼈대는 놔둔 채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빼고 하는 식이에요.”(이상면·기타)
|
정규 8집 <리모델링>을 발표한 크라잉넛 멤버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경록(베이스), 김인수(건반), 이상혁(드럼), 박윤식(보컬·기타), 이상면(기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크라잉넛의 뼈대는 펑크다. 1996년 닥치고 질주하는 곡 ‘말 달리자’로 데뷔한 이후 늘 한국 대표 펑크 밴드로 불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거칠고 직선적인 펑크 장르로만 한정할 순 없다. ‘서커스매직유랑단’처럼 구성지고 ‘밤이 깊었네’처럼 서정적인 곡도 있다. “우리에게 펑크는 자유”라고 이들은 말한다. 펑크 정신을 뼈대 삼고 그 위에 다양한 외피를 입힌 게 이번 앨범이다. 새로운 표현을 위해 전에는 쓰지 않았던 컴퓨터 가상악기 사운드도 몇몇 곡에 넣었다. 곡마다 색깔은 조금씩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한번만 들어도 계속 귀에 맴도는 선율을 장착했다는 점이다.
타이틀곡은 ‘내 인생 마지막 토요일’이다. “부어라 마셔라 춤을 춰라/ 우리의 인생이 여기까지인 듯/ 채워라 마지막 한 잔까지/ 이 밤을 위해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전형적인 크라잉넛표 권주가다. 이 노래는 겉보기처럼 마냥 흥겨운 것만은 아니다. 김인수는 다음날 폐업하는 술집을 배경으로 이 곡을 썼다. “즐겨 가던 홍대 앞 단골 바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어요. 해체한 밴드들, 떠나간 사람들, 먼저 하늘로 간 사람…, 그런 헤어짐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만들고 보니 술 먹고 죽자는 노래가 됐네요.” 옆에서 한경록이 거든다. “술 먹고 죽자는 정서는 크라잉넛의 혈액 같은 거죠.”
|
크라잉넛 정규 8집 <리모델링> 표지. 드럭레코드 제공
|
크라잉넛은 늘 그 자리에 있어왔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이들을 자꾸만 주변부로 밀어낸다. 그런 정서를 담은 곡이 ‘이방인’이다.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홍대 앞 라이브클럽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문을 닫고, 힘없는 서민들이 강제철거당하고, 시민들이 촛불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걸 보면서 만든 노래다. 이들은 스스로를 노래로 맞서는 이방인이라 칭한다. 실제로 2016년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100만 촛불 시민들과 ‘말 달리자’를 불렀을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요.”(박윤식·보컬·기타)
박윤식이 대부분 메인보컬을 맡았는데, 예외인 두 곡이 있다. ‘똥이 밀려와’에선 이상혁(드럼)이 메인보컬을 맡았다.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생리현상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담아냈는데, 역시나 방송에선 금지곡이 됐다. 원래 이상면·이상혁 쌍둥이 형제가 결성한 유닛 ‘트윈 크랭스’ 공연에서 하던 레퍼토리였는데, 크라잉넛 앨범에 욱여넣었다. ‘우리들은 걷는다’에선 이상면이 노래하고 내레이션도 했다. 개인적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던 시기에 이를 이겨내고자 만든 노래다. ‘나’가 아니라 ’우리들’을 주어로 한 게 눈에 띈다. “우리는 밴드 멤버들이기도 하고 저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기도 해요. 다같이 높고 넓게 걸어가자는 거죠.”
|
정규 8집 <리모델링>을 발표한 크라잉넛 멤버들. 왼쪽부터 박윤식(보컬·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김인수(건반), 이상면(기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크라잉넛은 데뷔 이후 멤버 교체가 한번도 없었다. 비결을 물으니 “참을성”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잖아요. 밴드도 그래요.”(한경록) 싸운 적은 없을까? “남자 다섯이 모였는데 어떻게 안 싸워요. 근데 술 먹고 나면 다 까먹어요.”(김인수) “우린 공연할 때 진짜 재밌어요. 무대에 서면 우리만 아는 리듬이 있거든요. 그 리듬을 타며 관객들과 교감할 때면 짜릿해요.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같은 그 희열 때문에 밴드를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한경록) 크라잉넛은 오는 27일 서울 서교동 브이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열어 팬들과 희열을 나누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