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23 16:14
수정 : 2018.10.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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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이태원 재즈클럽 ‘올 댓 재즈’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기자간담회에서 김종진이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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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공개
‘6년째 암투병중인 전태관, 음악으로 돕고 싶어’ 동료들 나서
후배들이 둘씩 짝지어 봄여름가을겨울 노래 재해석
오혁·이인우의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부터 순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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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이태원 재즈클럽 ‘올 댓 재즈’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기자간담회에서 김종진이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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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관이와 음악 시작하면서 음악가로서 이뤄야 할 ‘투 두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운 좋게도 딱 하나 빼고 다 이뤘는데, 못 이룬 건, 백발이 성성해도 무대에서 섹시한 뮤지션으로 남자, 무대 위에서 죽자….”
김종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뗐다. “이제 그것도 이루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전에는 음악은 갖춰진 무대에서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우리가 딛고 사는 땅 모두 무대가 됐어요. 언제 어디서든 음악 하다 세상을 떠나면 약속을 지키는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이태원 재즈클럽 ‘올 댓 재즈’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이 자리에 나머지 한 멤버 전태관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6년 전부터 암 투병중이다.
“투 두 리스트에 ‘힘들어져도 대중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가 있었어요. 태관이는 지금 그걸 지키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잘 싸워왔는데, 최근에는 수술마저 포기한 채 입원만 한 치명적 상황입니다. 격투기 링에 오른 선수 스태프의 심경처럼 조마조마하지만, 이번에도 이겨낼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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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돌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전태관(왼쪽)과 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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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은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로 출발했다. 김현식의 백밴드로, 김종진(기타)·전태관(드럼)·유재하(건반)·장기호(베이스)가 초대 멤버였다. 유재하가 솔로 활동을 위해 나가자 그 자리에 박성식이 들어왔다. 장기호와 박성식은 밴드를 나가 훗날 빛과 소금을 결성했다. 남은 동갑내기 친구 김종진·전태관은 1988년 봄여름가을겨울 이름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모두 8장의 정규 앨범을 통해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 이의 꿈’,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히트곡을 냈다. 퓨전재즈, 블루스록, 펑크(funk) 등을 아우르는 세련된 작법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올해 데뷔 30돌을 맞았지만, 김종진은 헌정 음반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음악가의 삶이 화려하게만 비칠까봐 오히려 거부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전태관이 부인상을 당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당시 빈소를 찾은 윤종신, 정원영, 김현철 등이 눈에 띄게 병약해진 전태관을 보고는 돕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결국 음악으로 돕자고 결심한 김종진은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해서 추진한 게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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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돌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전태관(왼쪽)과 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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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단순하다. 둘씩 짝을 이룬 후배 음악인들이 봄여름가을겨울 곡 중 하나를 골라 마음대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19일 가장 먼저 공개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은 밴드 혁오의 오혁(보컬·기타)과 이인우(드럼)의 합작품이다. 봄여름가을겨울 2집 수록곡을 이인우가 미국 동부 아르앤비·힙합 스타일로 편곡했고, 오혁이 노래했다. 여기에 한국에서 활동중인 미국 여자 가수 제이 마리가 우리말로 목소리를 보탰다. 복고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음악으로 재탄생해 젊은 청자들의 반응도 좋다. 김종진은 톡식 김정우, 스윗소로우, 이시몬 등과 ‘봄여름가을겨울과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답가 ‘땡큐송’을 발표했다.
이후 윤도현X정재일, 십센치X험버트, 황정민X함춘호, 윤종신X최원혁·강호정, 장기하X얼굴들 전일준, 데이식스X차일훈, 어반자카파X에코브릿지, 이루마X대니정 콤비의 곡을 순차적으로 공개한 뒤 12월20일께 헌정 음반으로 묶어 발표할 예정이다. 앨범 수익금은 전태관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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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돌 헌정 프로젝트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에 참가한 후배 음악인들.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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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돌 소감을 묻자 김종진은 말했다. “저는 1962년생입니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 주변의) 1962년생들 모두 뮤지션이 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남은 뮤지션은 나 하나밖에 없어요.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살아간다는 게 그만큼 힘들지만, 전태관과 함께여서 가능했어요. 전태관과 나는 친구이면서 사업을 함께 하는 직장 동료였어요. 서로 철저한 모습만 보이려 하고 경쟁도 했지만, 이제는 친구 앞에서 바보가 될 수 있는 우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우정을 지키고 싶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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