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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5 09:37 수정 : 2019.02.05 09:37

③설날, 업어주고 싶은 이 사람

일상에 쉼표가 찍히는 연휴엔 생각나는 사람들 있다. 보고 싶은 사람, 얘기하고 싶은 사람, 고마운 사람, 안아주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팀이 그동안 스크린에서, 무대에서, 전시장에서, 또는 인터뷰에서 만났던 이들 중에 골랐다. 만나서 참 좋았던 사람, 깨달음을 준 사람, 감동을 준 사람, 나를 울린 사람. ‘업어주고 싶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지난 1월26일 열린 ‘동갑, 동감: 이정선 & 유지연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유지연, 함춘호, 하덕규, 이정선(왼쪽부터). 안나푸르나 제공
그들이 퉁기는 현에선 마치 불꽃이 튀는 듯했다. 강호의 고수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 모여 일합을 겨루듯, 그들은 혼신을 다한 연주를 주거니 받거니 쏟아냈다.

1980년 12월5일, 미국의 ‘기타 귀신’ 알 디 메올라, 영국의 ‘기타 학자’ 존 맥러플린, 스페인의 ‘기타 황제’ 파코 데 루치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워필드극장의 금요일 밤을 화려한 기타 선율로 수놓았다. 세 대의 어쿠스틱 기타가 직조해낸 소리의 위대함을 만방에 떨치는 순간이었다. 이듬해 <프라이데이 나이트 인 샌프란시스코>란 제목으로 나온 당시 실황 앨범은 기타라는 악기의 가치를 증명할 때면 베토벤의 “작은 오케스트라”라는 극찬과 더불어 늘 거론되는 명반이 됐다.

지난 1월26일 저녁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린 ‘동갑, 동감: 이정선 & 유지연 콘서트’를 보며 ‘샌프란시스코의 금요일 밤’이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절정은 한국 어쿠스틱 기타의 양대산맥 이정선과 유지연에다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와 함춘호까지 가세해 네 대의 기타가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직전 시인과 촌장이 두 거장을 향한 존경심을 담아 게스트 공연을 선보였다. 하덕규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는 미성으로 부른 ‘풍경’에 전율이 돋았고, ‘가시나무’ ‘사랑일기’에 황홀해졌다.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시인과 촌장이 노래를 마치자 이정선과 유지연이 무대로 다시 나왔다. 네 남자는 나란히 앉아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네 대의 기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우러지는 연주에 넋이 나가고 아찔해졌다.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1분 넘는 전주 끝에 이정선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느 바람이 부는 날 저녁에/ 어여쁜 인어가 소년을 찾았네/ 마을 사람이 온 섬을 뒤져도/ 소년은 벌써 보이지 않았네/ 파도야 말해주렴/ 바닷속 꿈나라를/ 파도야 말해주렴/ 그 소년은 어디에~” 이정선이 1974년 발표한 1집 수록곡 ‘섬소년’의 2절이다.

‘동갑, 동감: 이정선 & 유지연 콘서트’를 한 하덕규, 유지연, 이정선, 함춘호(왼쪽부터). 안나푸르나 제공
이정선은 수많은 명곡들을 만들고 불렀다. 포크 그룹 해바라기 시절 발표한 ‘여름’ ‘뭉게구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그의 노래들은 다른 가수가 불러 더 유명해진 경우가 많다. 이광조가 부른 ‘오늘 같은 밤’, 김광석이 부른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조하문이 부른 ‘같은 하늘 아래’ 등도 원래는 그의 노래들이다. 디제이 배철수는 이를 두고 “형님이 노래를 못 불러서 그런 거 아닌가요?” 하고 농담을 던졌다. 이정선은 말했다. “예전에는 앨범을 내면 타이틀곡만 주목 받았거든요. 그런데 타이틀곡 아닌 노래들을 다른 가수가 불러서 알려진 거죠.” 그렇다. 이정선의 노래들은 진흙 속의 진주 같다. 당장은 눈에 잘 안 띄어도 영롱한 빛 때문에 언젠가는 발견되고 마는.

1950년생인 이정선은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이 되었다. “이제는 노래 가사도 자꾸 까먹고 틀리고 그래요. 눈도 잘 안 보이고 이제 기타도 대강 쳐요. 그런데도 관객들은 잘 몰라요. 나만 알지. 예전에는 공연 때 치밀하게 하려고 애 많이 썼는데, 왜 그랬나 싶어요. 요즘 대강 하니까 재밌어요. 새로운 재미를 누리고 있습니다.”

뒤통수를 꽝 때리는 듯했다. 어떻게든 뒤지지 않으려고, 남보다 반발짝이라도 앞서가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나는 어떻게 해야 대강 하는 게 재밌어지는 경지에 오르게 될까? 나도 저럴 수 있는 날이 올까? 새해엔 대강 하자, 이런 다짐이라도 해볼까?

고백한다. 이 기사 대강 썼다. 이렇게 쓰는 것도 괜찮은데? 음악으로 받은 감동에다 덤으로 삶의 깨달음을 얻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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