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9 11:37
수정 : 2019.06.1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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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을 단조하는 공장 내부의 스펙터클한 작업 광경을 담은 조 작가의 신작 사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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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사진가’ 조춘만의 개인전 ‘인더스트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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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을 단조하는 공장 내부의 스펙터클한 작업 광경을 담은 조 작가의 신작 사진(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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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가수 노사연의 히트곡 ‘바램’이 울려나오는 동영상의 배경은 볼트 공장이다. 그라인더가 볼트너트판을 번갈아 갈아대면서 불꽃을 튀기는 순간순간이 공장에 퍼지는 노사연의 노래와 맞물려 흘러간다. 기계의 작동과 마찰이 가요에 깃든 낭만적인 감정과 기묘한 연쇄작용을 일으키는 광경이다.
이 동영상은 사진가 조춘만씨가 최근 부산 각지의 공장 작업현장을 뒤지며 포착한 인상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달부터 부산 해운대 고운사진미술관에 차려진 개인전 ‘인더스트리 부산’에 나온 이 출품작을 장림·신평·사상 등 부산 공단 지역의 생산 과정을 찍은 사진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은 지난 7년 동안 ‘부산 참견록’이란 제목의 시리즈로 국내 중견 사진가들에게 의뢰해 부산의 다양한 면모를 찍어 전시해왔는데, 올해 이 기획 명칭을 ‘부산 프로젝트’로 바꾸고 새출발했다. 그 첫 작가로 지목된 이가 조춘만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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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내부를 찍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조춘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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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만 작가는 10대 후반부터 현대중공업에 취직해 용접노동자로 30여년을 일했다. 퇴직 뒤 울산 등 산업도시의 공단 플랜트 시설 사진을 찍으며 ‘기계사진가’로 이름을 알렸다. 정식 사진 수업을 받지 않은 그는 기계 만드는 현장에서 땀방울을 흘렸던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뷰파인더를 맞춰왔다. 퇴직 뒤 자신이 만든 거대한 배나 공단 구조물에서 홀연히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느끼면서 ‘기계사진’의 길에 뛰어들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울산 등 전국의 산업도시를 돌며 작업하다, 2년 전엔 독일의 버려진 제철소 풍경도 찍었다.
“2013년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싱가폴로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부산 항만의 경관을 사진에 담은 것이 부산 작업의 단초라고 볼 수 있죠. 이번에도 일부 전시를 하긴 했지만요. 그런데, 지난해 2월부터 미술관 프로젝트에 따라 부산 작업을 새로 하려고 하니 고민거리가 생겼어요. 항만을 10여일 정도 돌아보니 예상 밖으로 찍을 게 없는 겁니다. 울산처럼 압도적인 산업시설의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판넬벽과 지붕으로 둘러처진 다양한 종류의 생산품 공장들이 밀집한 게 부산의 특징이더군요. 그래서 힘겹게 업주에게 사정하면서 공장 내부의 기계와 시설 쪽으로 처음 눈길을 돌려봤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전시장에선 항만 이외의 대형 구조물 사진이 별로 없다. 공장 시설에서 펼쳐지는 부산 제조업 산품들의 생산 현장을 처음 사진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업들이 주로 나온다. 신발 밑창을 만들거나 풍력발전시설의 거대한 프로펠러 추진축을 프레스기계로 눌러 만들어내는 단조 작업 등 구체적인 공정 과정을 조씨의 시선으로 샅샅이 훑으며 초상사진 찍듯 앵글에 담았다. 금속을 깎는 과정에서 나온 쇠밥들의 파편을 확대한 사진, 항만 컨테이너 등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해 기하학적 구도로 구성한 작품도 있다. “기계의 진동과 열기가 느껴지는 생산 현장의 극적인 광경에 빠져들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진 속에선 기계 특유의 에너지와 열기,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듯한 현장감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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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밑창을 제조하는 공정의 기계장치들을 포착한 조 작가의 신작(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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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들은 부산의 제조업 생산 공정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지역적 정체성을 포착하려는 의욕을 보여주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조밀하게 연결된 기계 부속들과 조립 라인의 숲 사이에서 렌즈를 들이댔다는 것 말고 관객들의 시선에 이미지로 남은 의미는 무엇일까. ‘부산 프로젝트’라는 제목에 맞춤하는 지역적 특성이나 정체성이 사진에 명징하게 드러났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미술관 쪽은 작가가 지난해 2월부터 프로젝트와 관련해 촬영해온 공장 작업들을 중심으로 2011년, 2013년 찍은 부산 항만 작업들을 포함시켜 전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시 기간과 연동해 부산과 관련된 사진들을 단기간에 찍도록 주문한 기획 틀 자체는 무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과거 ‘부산참견록’ 시리즈 때부터 사진계에서 나온 지적이지만, 시선을 숙성할 여유를 주지 않고, 선정 작가한테 곧 닥칠 전시를 염두에 두고 신작을 주문한다면 충실한 결과물은 나올 수 없다. 조춘만 작가의 작업들도 마찬가지다. 몇년간은 공장 바닥을 훑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 역사를 고찰해야 부산 공간 특유의 정체성이 스펙터클로 나타나지 않을까. 8월7일까지.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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