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4 19:02
수정 : 2019.07.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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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24일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전’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재치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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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전’ 위해 내한
“소심한 침팬지 윌리는 나의 어린시절 투영
고릴라 캐릭터는 자상하고 힘센 아버지 연상”
“디지털 시대에도 펜과 물감으로 작업할 것”
“아이를 무시하지 않는 작가로 기억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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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이 24일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전’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재치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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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 작업의 중요한 관점 중 하나에요. 아이들이 내 책을 읽으면서 우울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가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둡고 무서운 이야기를 넣기도 하지만 결말은 늘 행복하게 열려 있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73)이 한국을 찾았다. 오는 9월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전>을 위해서다. 24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40년 전에 처음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대형전시들을 한국에 와서 하게 될 줄 몰랐다”고 기뻐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그의 초기 아이디어 북 등을 포함한 원화 200여점, 국내 작가와 협업한 설치미술과 영상 등으로 구성했다. 지난 6월 개막한 전시는 벌써 관람객 4만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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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윌리’의 주인공 윌리는 앤서니 브라운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 만든 캐릭터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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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을 간결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글과 세밀한 그림으로 표현한 그의 그림책은 침팬지와 고릴라가 자주 등장한다. 침팬지 윌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술관에 간 윌리> <겁쟁이 윌리> 등을 보면 윌리는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소심하고 놀림당하기 일쑤다. 작가는 약간은 부족해 보이는 윌리가 세상의 시선에 기죽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겁쟁이 윌리는 내 어린시절과 닮았어요. 저 역시 왜소해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책에 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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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가 최고야’에 등장하는 고릴라는 앤서니 브라운의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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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윌리가 그의 어린시절을 투영했다면 <고릴라> <우리 아빠가 최고야>에 등장하는 고릴라는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 “1983년 <고릴라>를 작업할 때 첫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내 아버지가 생각났죠.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권투선수였는데 남성적이면서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였어요. 형과 나에게 럭비 같은 운동을 가르쳐주면서 같이 시를 쓰고 책도 읽었죠. 고릴라는 힘이 센 동물이지만 예민하고 새끼를 끔찍하게 챙겨요.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보면 마치 그 안에 인간이 들어있는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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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리다’는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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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들은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반 고흐 등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들이 많다. 올해 3월 출간한 신작 <나의 프리다> 역시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던 어린 프리다가 경험했을 외로움, 좌절, 희망 등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프리다 칼로의 일기를 읽었는데 어릴 적 생일날 받고 싶었던 선물을 받지 못한 이야기가 나와 비슷했다”는 그는 “프리다 칼로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프리다 칼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책”이라고 했다.
나이와 국적을 떠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로 그는 뜻밖에 ‘정시 출퇴근’을 얘기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데 억지로 영감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찾아오기를 기다리죠. 가급적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아요.(웃음)”
그림을 그리고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노”라고 대답했다. “다른 작가들이 내 작품을 (미디어아트로) 새롭게 재해석한 걸 보는 건 흥분되는 일이에요. 그러나 난 펜과 종이, 그림물감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계속 작업할 겁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늘 행복하다는 그는 “아이를 무시하지 않는 작가, 진실한 작가, (삶과 업계에서 모두) 장수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면서 “그림과 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있는데 이는 어린이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만큼 전시를 보고 책도 읽으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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