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8 17:45
수정 : 2019.08.28 19:27
|
피나르 욜다스의 근작 <디자이너 베이비>. 유전자 조작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미래 아기의 얼굴과 몸을 상상하며 실린더통에 집어넣은 기괴한 분위기의 설치작품이다.
|
‘다빈치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유전자조작·인공지능 등 문명적 과제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 아트로 탄생
|
피나르 욜다스의 근작 <디자이너 베이비>. 유전자 조작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미래 아기의 얼굴과 몸을 상상하며 실린더통에 집어넣은 기괴한 분위기의 설치작품이다.
|
유전자 조작, 기후변화 같은 현안 앞에서 인류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 거대한 물음에 별별 모양의 튀는 작품들로 예언 같은 대답을 내놓는 이들이 예술가다. 초록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수치 데이터로 만든 뒤 그 수치를 꽈리방울 조형물로 형상화한 청년 예술가, 세계 각지의 미세먼지 요리를 창조하는 싱크탱크 예술그룹, 유전자 조작으로 체형과 용모를 디자인한 아기의 모형을 만드는 디자이너 등등….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렇듯 기발하게 표현한 예술가들을 서울 변두리 공업단지 안의 전시장에서 감상해보는 건 약간 황당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경험이다. 정밀가공, 절삭 등의 작업을 하는 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독산동 두산초등학교 뒤편 금천예술공장이 그곳이다.
|
‘2019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권병준 작가의 사운드퍼포먼스 <자명리 공명마을>. 금천예술공장 제공
|
서울문화재단 산하의 예술기지인 이 공장에서 지난 23일부터 국내외 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작품 축제인 `2019 다빈치 크리에이티브’가 열리고 있다. 2010년 시작해 올해 8회째를 맞은 축제는 국내 미디어아트 작가들 사이에서 신예 작가 발굴 기회로 알려져 있다. 올해 주제는 ‘생명의 삶’(리빙 라이프). `호모 헌드레드’라고 일컬어지는 백세시대를 맞아 유전자 조작, 기후변화, 인공지능 등을 열쇳말로 국내 공모작가, 국외 초청작가 13개팀의 인터랙티브 아트와 설치, 영상 작업들이 나왔다. 3층 공간에 늘어놓은 출품작들 이모저모를 보면 기계와 바이오공학, 디지털 가상환경을 붙들고 미래의 화두를 고민하는 요즘 미디어 작가들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다.
서두에서 인상적으로 관객을 맞는 작품이 권병준 작가의 사운드퍼포먼스 <자명리 공명마을>이다. 전시장 벽에 걸린 이어폰을 끼고 공간을 돌아다니다 관객끼리 스쳐 지나갈 때 고개 숙여 인사하면 각자의 귀에 들리는 자연의 소리나 음악들이 뒤섞이거나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헤드폰이라는 고립된 개인들의 소리 듣기 행위를 소통하고 연결하는 행위로 바꾸려는 작가의 속깊은 생각이, 상대방의 헤드폰 소리를 파악해 바꾸는 무선센서네트워크 모듈이라는 음향기술과 만나 웅숭깊은 사운드아트가 탄생했다. 박얼 작가의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은 인간들의 정신병리적 증상인 스토킹이나 자폐증을 특정 로봇만을 따라다니거나 벽에만 찰싹 달라붙는 로봇의 행태로 흥미롭게 전환시켰다.
|
김준수 작가의 설치조형물 신작 <오류>. 인간을 도우려 만들어진 기계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되레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낯설게 바라본다.
|
성장기에 아토피 질병을 앓았다는 김준수 작가의 설치조형물 신작 <오류>는 면역세포 덩어리를 확대한 모양을 하고 있는 기계 조형물이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바이러스로 간주해 몸체에서 날카로운 쇠 날이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동작을 되풀이한다. 인간을 도우려 만들어진 기계들이 통제를 받지 않고 되레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을 가상이 아닌 현실 공간에 빚어낸 것이다. 자신의 아토피 발병 체험을 바탕에 깔고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낯설게 성찰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국외 작가의 작품들로는 피나르 욜다스의 근작 <디자이너 베이비>와 게놈요리센터의 <스모그 맛보기> 등이 눈에 와닿는다. <디자이너 베이비>는 유전자 조작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미래 아기의 얼굴과 몸을 상상하며 실린더통에 집어넣은 기괴한 분위기의 설치작품. <스모그 맛보기>는 세계 각지의 미세먼지 많은 거리와 공사현장 등에서 실제로 요리를 만들면서 먼지가 들어간 음식을 맛보는 체험형 영상으로 기후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작품으로 뽑아낸 참여 작가들의 테크놀로지와 상상력은 완성도가 그닥 높은 편은 아니다. 당연히 난해하고 조악한 인상부터 준다. 그러나 조형적 단면이나, 작업 프로세스에서 삐져나오는 메시지는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는 것들이 꽤 있다. 개별 작품마다 고단한 집중이 필요한 전시지만, 인간의 미래에 대한 색다른 성찰과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을 준다. 9월11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금천예술공장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