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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3 18:33 수정 : 2019.09.03 20:07

미국 사진작가 아리 세스 코헨이 2012년부터 발표해온 <어드밴스드 스타일> 연작의 일부.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패션 감각을 발산해온 뉴욕 거리의 노인 패셔니스타들을 포착해 찍은 작가의 연작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시니어 스타일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았다.

코리아나미술관 ‘아무튼, 젊음’

젊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집착과
늙은이로 변해가는 시간의 경계
영상·사진·자화상 등 현대미술로

미국 사진작가 아리 세스 코헨이 2012년부터 발표해온 <어드밴스드 스타일> 연작의 일부.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패션 감각을 발산해온 뉴욕 거리의 노인 패셔니스타들을 포착해 찍은 작가의 연작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시니어 스타일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았다.
동유럽 크로아티아 출신의 여성 작가 사냐 이베코비치는 자신의 젊은 시절과 노년의 얼굴을 캔버스 삼아 40년의 시차를 두고 드로잉 작업을 벌인 영상물로 유명하다. 그의 조국이 유고 연방이었던 1976년 흑백 영상에서, ‘20대의 아가씨’ 이베코비치는 평소 해온 얼굴 마사지의 방향을 표시한 화살표를 이마·뺨·눈두덩에 그려놓고 열심히 문질렀다. 얼굴은 드로잉 선이 뭉개지면서 얼룩진 흔적들로 엉망이 됐다. 조국이 크로아티아로 바뀐 지 한참 지난 2015년, ‘60대 할머니’ 이베코비치는 역시 똑같은 얼굴 마사지 드로잉 작업을 총천연색 영상에 녹화했다. 잔뜩 주름지고 늘어진 그의 얼굴은 예전처럼 드로잉의 뭉개진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 40년 세월의 간극이 있는 두가지 영상을 보면서 관객은 선뜩하게 깨닫게 된다. 이 똑같은 행위는 평생 반복된 것이며 젊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집착, 욕망, 압박 또한 여전히 계속될 것임을.

이베코비치의 얼굴 캔버스 영상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 지하 전시실에 나왔다. 지난달 29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전 ‘아무튼, 젊음’은 시공간에 예민한 일군의 현대 미술가들이 나이듦에 대해서 펼쳐온 작업을 선보이는 작품 마당이다. 나이 들어 늙은이로 변해간다는 것, 젊은 시절 탱탱했던 몸이 쭈글쭈글 주름지고 늘어진 몸으로 바뀌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시간 속 존재의 가변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제재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전시 기획자들은 예술가들 특유의 호기심을 배경으로 노화와 젊음에 대한 몇가지 흥미로운 코드를 이야기한다.

코리아나미술관 지하 전시장에 나온 영상설치작품 <아무것도>(Nothing Else). 50~70대 노령의 무용가들이 나름의 연륜에서 나온 여유롭고 유연한 몸짓을 벽면에 풀어놓는다. 신체의 동작을 통해 젊음과 늙음의 의미, 경계를 사유하게 하는 수작이다. 미국과 스위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영상설치작가 셀린 바움가르트너가 2014년 만들었다.
가장 도드라진 코드는 젊음이란 개념이 지닌 상대성과 가변성이다. 미국 작가 마사 윌슨의 작업은 74년 찍은 자신의 젊은 두상과 2009년 찍은 노년의 두상을 대비한 사진을 병치(<미녀+야수같은>)시키거나 한쪽 눈썹엔 칠을 하고 다른 눈은 눈썹까지 아예 지워버린 이미지를 대비시키는(<아름다움은 눈에 있다>) 작품을 통해 나이듦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청춘과 노화가 우리 몸을 통해 서로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70년대 노년의 얼굴로 분장한 작가의 청년 시절 사진이 2009년 노년이 된 뒤 실제 자신의 맨얼굴로 실현됐음을 보여주는 <나는 내가 가장 무서워졌다>는 이런 우리 삶의 속성을 익살스럽고도 처연하게 실감시켜주는 작품이다.

뒤틀리고 왜곡된, 사진작가 신디 셔먼의 ‘셀피’ 근작. 2017년 8월4일에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된 작품을 작가 허락을 받아 전시장에 내걸었다.
미국 사진작가 아리 세스 코헨이 2012년부터 발표해온 <어드밴스드 스타일> 연작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패션 감각을 발산해온 뉴욕 거리의 노인 패셔니스타들을 포착해 찍은 작가의 연작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시니어 스타일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들인데, 색감이 요란하다 싶을 만큼 화려하면서도 나름 연령의 기품을 의식하는 뉴요커 노년 여성들의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지하 전시장에 나온 셀린 바움가르트너의 영상설치 <아무것도>(Nothing Else)는 50~70대 노령의 무용가들이 연륜에서 나온 여유로운 몸짓을 벽면에 풀어놓는다. 보통 무용가들은 20~30대가 지나면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지 못해 은퇴하기 마련인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젊지 않은’ 춤꾼들의 유연한 신체 동작을 통해 젊음과 늙음의 의미, 경계를 사유하게 한다. 70년대 이래 자화상 시리즈로 이름을 떨친 사진 거장 신디 셔먼은 2017년 이래 지속해온 인스타그램의 뒤틀린 셀프 사진 근작들을 이번 전시에 내걸었는데, 디지털 사진의 홍수 속에서도 사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작업으로 젊은 실험정신을 과시한다.

젊음은 탄력 넘치는 외모와 몸을 통해 주목을 끌고 도드라져 보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1세기 로마시대 철학자 세네카가 논평했던 대로, “모든 이에게 노년은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시의 출품 작가들은 겉모습에 대한 강박을 넘어 젊음을 상대적으로 살펴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11월9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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