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0.02 06:00 수정 : 2019.10.02 09:04

5년 만의 새 앨범 <플로>로 돌아온 가수 이상은. 아름다운 상상스튜디오 제공

5년 만의 새 앨범 ‘플로’ 발표

세월호·가족 문제로 힘겹던 공백기
‘한국 자살률 1위’ 음악적 책임감 느껴
노래의 근본적인 힘·기능 고민하며
미니앨범에 북유럽 ‘휘게’ 감성 담아
“벗어나고 싶었던 담다디 시절 모습
누군가에게 행복 줬다면 그걸로 만족”

5년 만의 새 앨범 <플로>로 돌아온 가수 이상은. 아름다운 상상스튜디오 제공
가수 이상은에게 지난 5년은 비바람을 맞은 시기였다. 2014년 초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만든 15집 <루루>를 발표했지만, 세상은 팍팍해져만 갔다. 그해 4월 세월호가 뒤집어졌다. 안산 단원고에 가서 희생된 학생들 부모 앞에서 ‘언젠가는’을 노래하다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부모들이 죄인이 아닌데 왜 억압당해야 하지?’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인디음악·창작음악신이 쪼그라들었다. 아버지의 건강마저 안 좋아지자 외동딸인 그는 충남 공주로 내려가 부모님 곁을 지켰다. 음악을 내려놓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에 대한 고민을 곱씹었다. “예전에는 음악적 실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음악은 듣는 사람이 좋으면 돼, 듣고 치유되면 돼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현학적인 태도를 버리고 노래의 근본적인 힘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지난 5년간 한 고민이었어요.” 최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은이 말했다.

올해 초 문득 이제는 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악으로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1위라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왜 행복하지 않지?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 음악에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이 아름답고 신났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들으면 치유되고 위로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죠.”

5년 만의 새 앨범 <플로>로 돌아온 가수 이상은. 아름다운 상상스튜디오 제공
봄부터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김기정 전 매니저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했다. 한동안 음악계를 떠나있었던 김기정 프로듀서는 넓은 인맥을 발휘해 싱어송라이터 이규호, 박성도(원펀치), 이능룡(언니네 이발관), 강이채(이채언루트) 등을 편곡자로 섭외했다. 이상은이 뼈대를 만들어서 보내면 이들은 포크, 팝, 일렉트로닉 등 다채로운 색감의 옷을 입혔다.

“제가 컴퓨터 작업으로 기본 악기만 스케치해서 편곡자에게 보내니 훨씬 풍부한 사운드로 만들어주더라고요. 영화로 치면 편곡자는 배우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가 쓴 시나리오와 대사를 몸으로 구현해주거든요. 지난 앨범에서 혼자 편곡까지 다 했을 땐 너무 외롭고 힘들었는데, 이번에 여럿이서 함께 작업하니 정말 좋았어요. 결과물에도 만족하고요. 김기정 프로듀서의 공이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2일 발표한 미니앨범(EP) <플로>다. 이상은은 첫 곡 ‘릴랙스’부터 편안한 휴식을 선사한다. “저는 북유럽의 ‘휘게’(편안하고 아늑한 상태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를 좋아해요. 집에서 고양이와 놀면서 늘어져 있을 때 참 행복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썼더니 이규호씨가 북유럽 휘게 느낌을 정말 잘 살려줬어요.” 이상은은 “오로라는 없었지/ 집에 오니/ 고양이의 눈 속/ 초록빛 오로라”라고 노래하며 사람들에게 “릴랙스/ 내려놔놓아” 하고 조언한다.

가수 이상은이 5년 만 발표한 새 앨범 <플로> 표지. 브리즈뮤직 제공
소박한 우리 동네 여행기 ‘일상 노마드’,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가을 수채화’가 흐르고 나면 타이틀곡 ‘넌 아름다워’가 이어진다. 삶의 파도가 거칠어도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는 이 노래는 화제의 독립영화 <벌새>와의 협업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바 있다. 한번만 들어도 쏙쏙 꽂히는 선율과 이능룡의 경쾌한 편곡이 고개를 까닥이게 만든다.

이어지는 노래는 이상은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이자 앨범 제목까지 된 ‘플로’(흐름)다. “상처받은 사람은 지나간 일에 매달리면 안돼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해서도 안되고요. 어제도 내일도 잊고 오롯이 오늘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만 생각하면 회복되고 치유되죠. 어린아이처럼 지금 흘러가는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삶, 그걸 노래한 게 ‘플로’예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다 보면 결국 “마음 깊은 곳/ 그곳에 있는 오아시스”(‘오아시스의 밤’)에 가닿게 된다. 앨범 속 작은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난다.

5년 만의 새 앨범 <플로>로 돌아온 가수 이상은. 아름다운 상상스튜디오 제공
최근 부는 뉴트로(뉴+레트로) 열풍 속에 이상은의 31년 전 데뷔곡 ‘담다디’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2집 수록곡 ‘그대 떠난 후’는 한국의 시티팝으로 재조명받으며 젊은 듀오 ‘1415’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그 덕에 10~20대의 팬클럽 가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10년 전이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만의 예술을 할거야 했을 텐데, 이제는 어린 팬들이 귀여워 보이고 이런 현상이 신기하기도 해요.”

이상은은 ‘담다디’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절 돌연 유학을 떠났다. 이후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자신만의 독자적 음악세계를 펼쳐왔다. “‘담다디’ 시절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했어요. 웃기게 춤추는 아이돌 이미지로 보여지는 게 고통스러웠죠. 그게 원동력이 되어 싱어송라이터로서 계속 음반을 낼 수 있었어요. 이젠 그 시절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니었다 해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행복을 줬다면 그걸로 가치 있다고 인정하게 됐어요. 전에는 공연에서 ‘담다디’를 절대 안 했는데, 요즘은 관객들이 요청하면 선물로 불러드려요. 그러면 얼마나들 좋아하시는데요(웃음).”

이상은은 오는 9~10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펼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