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14 21:09
수정 : 2019.10.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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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작 <갈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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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대 작가들 신작전 눈길
김기라·김형규 2인전 ‘X-사랑’
예술가가 본 ‘사랑의 의미’
퍼포먼스·영상 작품으로 담아
전기 조형물 선보인 ‘김윤철전’
박보나, 영상-금속용기 설치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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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작 <갈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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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유명한 미술작가 앤디 워홀에게 그의 여자친구는 사랑을 물었어요. 당신은 무엇을 가장 사랑하냐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그는 돈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하얀 배경 속 화면에 ‘여러분 사랑을 믿으시냐’고 물으면서 튀어나온 어린 소녀의 강연(?) 영상은 마지막 장면이 야릇하다. 이 소녀는 소크라테스,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등 역대 유명한 철학자, 예술가들이 말했던 사랑의 담론들을 한참 외워서 줄줄 이야기하다가 말미에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기행을 이야기하며 화면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물론 소녀는 사랑을 제대로 알고나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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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X) 사랑’전에 나온 김기라 작가의 설치영상 <보편적 사랑-엑스(X)를 믿으십니까?>의 한 장면. 어린 소녀가 등장해 역대 유명한 철학자, 예술가들이 사랑에 대해 펼친 담론을 외워서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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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의 대안미술공간인 ‘보안여관’ 옛 건물과 신관 지하에 차려진 김기라, 김형규 작가의 2인 신작전 ‘엑스(X) 사랑’(25일까지)은 신관 지하공간의 영상물로 나오는 소녀의 사랑 담론 암송을 통해 남녀의 뜨거운 감정놀음으로, 혹은 신파조로 생각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역설적으로 되묻는다. 예술가가 본 인생의 과정으로서의 사랑,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기 위해 일반적인 미술 전시의 틀거지를 택했다. 10대 소녀는 깔끔한 신관에 들어가 영상을 틀었지만, 여관 옛 건물의 오래된 골재 사이에서는 청년 래퍼 아날로그 소년과 판소리 소리꾼 정은혜, 힙합 작곡가 차선수가 함께 공연을 하면서 퍼포먼스 영상을 만들었다. 그림과 조각 같은 조형물이 없고 그들의 공연 영상 사이로 울고 웃고를 되풀이하는 여배우, “사랑합니다”를 외치다 “멍멍” 짖으며 바닥을 기는 남배우의 기행을 담은 영상들이 뒤섞인다. 우리가 외면했던 삶 속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로서의 사랑, 작가가 세상의 관객과 소통하는 의미로서의 사랑 등 여러 요소가 흥미롭게 뒤섞이는 전시가 만들어졌다. 10일 개막 퍼포먼스에 출연한 소리꾼, 배우들이 퍼포먼스를 벌인 영상이 상영 중인데, 24일 다시 관객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소리와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사랑의 전시가 완결되는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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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작 <강화도-시간을 가로지르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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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사랑’전은 요즘 북촌, 서촌 미술판에서 뜨거운 소장, 청년 작가의 전시 바람을 대표한다. 미술판에서 10월 초·중순은 가을 전시 성수기다. 서울 도심 화랑가는 중견, 대가 전시로 북적이는데 올해는 유난히 30~40대 소장작가와 20대 청년작가들의 신작전이 도드라지게 많이 보여 눈길을 끈다.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하는 사랑을 영상, 퍼포먼스, 힙합 등을 엮은 간이 오페라 영상으로 풀어낸 보안여관의 2인전 ‘엑스 사랑’ 외에도 테크놀로지와 재료공학을 섭렵한 작가가 특정 재료들을 압축하거나 전기를 통한 구조물로 색다른 조형적 상상력을 보여준 서울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의 김윤철전(11월17일까지)이 우선 눈길을 붙잡는다. 지구에 떨어진 운석의 발견 시기와 한국 현대사의 인질극이 착종된 텍스트,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대화 영상과 고무공 금속그릇의 조합을 보여주는 서울 갤러리조선의 박보나 작가 설치전(27일까지) 등도 주목할 만하다.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는 김무영, 이우성 등 젊은 작가 4명이 폭력에 대한 다층적 탐색을 전시로 보여주는 ‘링, 동그라미를 가리키고 사각을 뜻하는’(26일까지)을 차렸다. 인사동 갤러리 밈에서는 젊은 여성작가 정지선, 정수정씨가 각각 개인전(모두 11월3일까지)을 열어 작가 특유의 여성적인 인물군상과 상상 속 작가가 갈망하고 부유하는 세계를 독특한 필치로 담아낸 드로잉, 유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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