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7 15:53
수정 : 2020.01.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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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출처 포고렐리치 개인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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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내한하는 이보 포고렐리치
쇼팽 콩쿠르 ‘우승자보다 유명한 탈락자’
‘팝스타 인기’ 누리다 아내 죽음 후 하락세
21년 만에 앨범 내며 월드 투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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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출처 포고렐리치 개인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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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콩쿠르로 평가불가한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신화의 완성에 ‘이 사람’만큼 기여한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22살 때인 1980년에 출전한 제10회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그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하자,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그는 천재다”라고 항의하며 심사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일약 클래식계의 총아로 떠올랐고, ‘우승자보다 유명한 탈락자’(우승자는 당 타이 손)로 불렸다. 이후로는 승승장구였다. 다음 해 미국 뉴욕 카네기홀 데뷔를 시작으로 1982년엔 명문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과 독점 계약해 1998년까지 14장의 앨범을 냈다.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독특한 연주와 아이돌 가수 같은 외모, 21살 연상의 피아노 스승과 결혼한 일 등 적지 않은 화젯거리도 낳았다.
하지만 1996년 아내가 암으로 죽고 2000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며 우울증으로 1년간 연주를 중단하는 등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 어마어마한 재능이 비극적으로 길을 잃었다. 뭐가 잘못됐는가”(2006년 <뉴욕 타임스>), “극도로 비음악적인 끔찍한 연주”(2015년 <가디언>) 등 혹평이 쏟아졌다. 그러던 지난해 4월, 21년 만에 새 앨범을 출시하며 다시 전 세계 클래식 팬을 향한 재기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다음 달 19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로 15년 만에 내한하는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6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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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출처 포고렐리치 개인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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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독일 매체 <노르트바이에른>과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앨범을 내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지식을 쌓고 진보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싶었습니다. 피아노 연주 기술을 늘리는 것이 중요했죠. 새로운 경험들을 얻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 새 리코딩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독특하게도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로 구성돼 있다.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공헌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제가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던 곡들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제 인생 절반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연주했으니까요. 베토벤 소나타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레퍼토리입니다. 높은 수준의 순수 예술에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쉽고 간단해 보인다는 것은 반대로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뜻한다는 걸요. 그 사실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라는 긴 답변을 보내왔다.
연주와 리코딩에 대한 비판적인 비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왔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수십 년 전부터 제 공연 비평 읽기를 관뒀습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비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멀리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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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 Bernard Martinez/Sony Clas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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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한 공연에선 바흐·베토벤·쇼팽·라벨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저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의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들을 찾아낼 것이고,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젊은 관객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저의 음악 세계만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만나 보실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그의 재능이 길을 잃었는지, 아니면 어려움을 거쳐 새로운 진화의 길에 들어섰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을 듯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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