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2 15:30
수정 : 2019.10.0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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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임유가 1665년 열린 과거 시험에서 써낸 답안지. 홍주성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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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임씨 송암공파 종친회, 홍주성역사관에 기탁
1665년 임금의 온양온천 행차 기념해 열린 과거에서
전체 9위 기록…‘차상’ 등급 받아 급제는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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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임유가 1665년 열린 과거 시험에서 써낸 답안지. 홍주성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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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홍주성역사관은 최근 평택 임씨 송암공파 종친회로부터 조상 임유(1638~?)의 354년 전 과거 시험 답안지를 기탁받았다고 2일 밝혔다.
이 답안지는 조선 현종 6년(1665년)에 임유가 과거 시험에 응시해서 제출한 답안지로 흔히 시권(試券)이라고 불리는 문서다. 현종이 당시 온양온천(현재 아산시)에 행차한 것을 기념해 충청도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고 한다.
이때 문과 시험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가를 논하라’(人力可以奪造化論)였다.
임유는 이에 대해 ‘조화’라는 개념을 ‘자연의 조화’와 ‘인간이 만든 조화’로 구분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한쪽이 이기고 지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따라 자연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치며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임유는 이 답안으로 ‘차상’ 등급을 받아 급제하지 못했고 전체 응시자 중 9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험 결과가 나온 뒤 현종은 급제자 중 온양온천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고 온양온천이 고향인 응시생을 추가로 합격시키라고 명했다. 현종의 명에 따라 임유도 추가 합격의 기회를 얻었으나 임유는 외가가 온양온천이지 본가는 결성현(현재 홍성군 결성면)이라는 점이 드러나 다시 탈락했다. 홍주성역사관의 김예신 학예연구사는 “보통 과거 시험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답안지는 모두 수거돼 옷을 만드는 등 재활용되는데, 임유는 비록 최종에선 탈락했지만 합격자로 간주돼 답안지를 돌려받았고 이를 문중에서 계속 보관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택 임씨 집안은 대대로 홍주(홍성)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임유의 증조부는 조선 중기의 무신 임득의(1558∼1612)인데, 그는 선조 29년(1596년)에 홍주에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해 청난공신(淸難功臣)에 책봉됐다. 홍성군 서부면엔 임득의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 정충사(충남 문화재자료 제401호)가 있다. 또 임득의의 셋째 아들인 임전(1600~1651)은 효종 1년(1650년)에 홍주 목사를 지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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