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2 20:40
수정 : 2006.09.05 15:34
세련된 맛, 이태원 ‘라타볼라’
우직한 맛, 대학로 ‘디마떼오’
촉촉+바삭, 나무가마로 구운 ‘야누스의 맛’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21살 때 피자를 처음 먹어보았다. 라지(L)였는지, 엑스라지(XL)였는지, 보름달만한 크기의 피자가 나를 압도했다. 두께도 만만치 않았다. 이걸 어떻게 다 먹어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다 먹었다. 다 먹고 난 후의 감상은 단순했다. 뭐, 좀 느끼하네. 20년 동안 김치와 된장으로 단련된 몸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후로도 가끔 피자를 먹긴 했지만 빈대떡이 더 입에 맞았다. 피자에는 온갖 토핑이 풍성했고, 빵의 테두리에까지 갖가지 재료가 들어 있었지만 빈대떡 같은 아삭한 맛도 없었고 뭉근한 맛도 없었다. 끊어질 듯 끈질기게 달라붙는 피자치즈만 조금 신기했다. 그 체인점의 피자가 미국식 피자였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까마득한 후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탈리안 피자를 처음 먹었을 때 피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탈리안 피자의 가장 놀라운 점은 반죽(도)이었다. 나무가마에서 구운 피자의 도는 두 얼굴을 가진 괴물과 같았다. 미국식 피자에 대면 종잇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얇은 도의 한가운데는 손가락이 쑥 들어갈 것처럼 촉촉했고, 바깥쪽은 과자 뺨칠 정도로 바삭거렸다. 나무가마이기에 가능한 맛이었다. 나무가마는 수분을 적게 흡수하기 때문에 도의 한가운데는 촉촉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바깥쪽이 바삭한 것은 반죽을 칠 때 밀가루가 바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밀가루가 몰린 부분은 밀도가 높아지고 공기가 적어지는데 이 때문에 바삭해지는 것이다. 바탕만 맛있다면 토핑이 시원찮아도 훌륭한 피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피자는 토핑 맛이 아니라 빵 맛이었다.
이탈리안 피자의 감동을 느끼고 싶을 때면 이태원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타볼라(02-793-6144)를 찾아간다. 모차렐라 치즈와 토마토 홀, 바질만 들어가는 ‘피자의 기본’ 마르게리타, 매운 살라미가 들어가는 디아볼라, 달걀이 들어가는 카프리치오사 등 어떤 피자를 먹어도 실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무가마에서 구운 도가 맛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피자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폴리를 떠올린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자를 먹으려고 나폴리로 향한다. 하지만 이탈리안 피자에도 두 종류가 있다. 나폴리 스타일과 대도시 스타일. 나폴리식은 도가 두껍고 맛도 우직하다. 대학로의 피자전문식당 디마떼오(02-747-4444)가 나폴리 스타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라타볼라는 도가 얇고 세련된 맛을 내는 대도시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 장단점이 있지만 도의 맛을 우선시하는 나로서는 라타볼라에 더 자주 가게 된다.
피자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집에서도 피자를 만들어 먹게 된다. 피자만큼 손쉬운 음식이 없다. 커다란 반죽을 만든 다음 100그램씩 분리해 냉동실에 넣어두면 먹고 싶을 때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 반죽만 잘 만들어졌다면 그 위에 뭘 얹든 상관없다. 안초비를 넣어도 좋고, 소시지를 얹어 먹을 수도 있고, 감자도 좋다.
하지만 나무가마의 맛만큼은 내기가 어렵다.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의 맛을 느끼고 싶으면 또다시 라타볼라에 가는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경고. 라타볼라의 피자는 짭짜름한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짜다고 해도 피자 체인점에서 서비스로 주는 피클 한 접시보다는 소금양이 적으니 안심하시라. 그리고 계속 먹다 보면 그 짠맛 속에서 달콤함도 느낄 수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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